기업 후계

2021년 아마존에서 제프 베이조스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던 제프 윌크가 53세의 나이로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아직도 현업에서 가장 강력한 실행력을 가진 인물이었고, 커리어상 내려올 이유가 없어 보이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뒤, 앤디 재시가 차기 CEO로 발표됐다. 기업 운영과 승계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건 GE의 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베이조스의 노력이었다.

GE의 잭 웰치 사례는 대기업 승계의 교과서적 실패로 자주 언급된다. 3파전 구도를 공개적으로 만들고 최종 후보를 발표했고, 탈락한 둘은 불만을 품고 핵심 인력과 함께 회사를 떠났다. 조직 내부에 정치적 잔여물이 남았고, 외부로는 GE의 인재 파이프라인이 약하다는 신호를 줬다. 세 후보자들에게도 좋지 않았고 GE도 그 이후 추락을 거듭했다.

베이조스는 이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았다. 후계 경쟁에서 밀릴 수 있는 인물을 먼저 ‘자연스러운 은퇴’로 정리했다. 감정이 상할 여지를 없애고, 세력을 규합해 나갈 시간 자체를 차단했다. 후계자 발표 이전에 이미 판은 정리되어 있었고, CEO 교체는 시장에 안정적인 이벤트로 전달됐다. 조직 내부 충격도 최소화됐다.

최근 애플에서 캐서린 애덤스, 리사 잭슨, 앨런 다이, 제프 윌리엄스, 댄 리치오, 루카 마에스트리, 존 지안난드레아, 크레이그 페더리기 등 핵심 임원들이 잇달아 은퇴와 퇴사를 발표했다. 단순한 세대교체라 보기엔 너무 집중적이고, 타이밍도 맞물려 있다. 팀 쿡 체제 이후를 준비하는 단계로 해석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잡스에서 팀 쿡으로 승계는 잡스 추모 분위기에서 정신없이 이뤄졌지만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가 됐고, 지금 회사 가치 90%가 팀 쿡 체제 아래에서 이룬 성장이었다. 이제 회사가 너무 크다보니 아무 다른 문제가 없어도 후계 과정에서 잡음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손실이 가능하다. 지금 중요한 건 ‘다음은 누가 어떻게 회사를 키울 것인가’보다 ‘후계 과정에서 회사 역량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다. 내부 경합을 공개적으로 방치하면 조직은 분열되고, 시장은 불안을 느낀다. 반대로 조용한 퇴장을 설계하면, 승계는 자연스러운 연속으로 보인다. 존 터너스가 후임이라는 소문이 도는 이유도 이 맥락 안에 있다. 이미 내부 정리는 상당 부분 끝났고, 남은 건 발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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