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소프트웨어 개발은 팀을 짜고 개발 계획을 만들고 개발하고 출시하고 보완/지원에 들어갔다. 출시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그 전까지는 버그가 있어도 용서가 되지만 출시하고 판매한 시점에 버그가 있으면 상품은 망할 가능성이 높다. 모든 리스크가 출시 시점에 집중됐다. 배포 후 패치도 가능하지만 배포 마찰 비용이 너무 크다. CD나 카트리지에 담긴 게임과 달을 향해 쏜 로켓은 패치하기 힘들다.
지금 개발은 온갖 버그, 판단 착오, 실수 등이 있어도 어쨌건 프로젝트는 돌아가게 돼 있다. 배포하는 시점의 완성도가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어도 판매 이후에도 꾸준한 개발이라는 개념에 모두 익숙해져있다. 마이크로서비스, API, 컨테이너로 모든 부분이 항상 교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개발 환경도 실수를 해도 바로 되돌릴 수 있는 git 중심으로 재편됐다. 클라우드와 SaaS의 보편화, 그리고 사용자의 기대치 변화가 맞물렸다. 이제는 Github 액션 한 번으로 전 세계에 하루에도 몇 번씩 배포가 가능한 시대다.
옛날 폭포수 방식 때는 개발 팀 규모에도 분명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모델에서는 모든 팀이 같은 순간에 맞물려야 하므로 조율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실패하면 역시 망한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 많을수록 조직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팀 규모와 병렬성이 제한됐다.
반면 지속적 개발 모델은 ‘항상 미완성’을 전제로 한다. 유기적 통합이 아니라 느슨한 결합이 가능하다. 지금은 git, CI/CD, 롤백, feature flag 덕분에 실수가 구조적으로 흡수된다. 대규모 협업이 쉬워졌다.
오픈소스의 방대한 팀 운영은 기술적 성숙보다 실패 허용 구조 덕분이다. 실수는 revert되고, 논쟁은 fork로 분리된다. 단일 성공 순간이 없기 때문에 참여 장벽이 낮다. 복잡성을 코드 내부 로직이 아닌 인프라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해결했다. 이는 전통적인 컴퓨터 공학을 넘어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소프트웨어 거버넌스에 적용한, ‘사회적 운영체제’라 부를 만한 혁신이다.
항공, 군사, 의료, 원전 등 업계에서도 애자일을 사용하지만 개발을 핵심 안전 영역과 비안전-크리티컬(safety-non-critical) 주변 시스템으로 나누고 후자에서 애자일을 활용해 빠른 반복과 피드백의 효능을 얻는다. 전자의 미션 크리티컬한 분야에는 통제 관리에 용이한 폭포수 모델이 여전히 강세다. 일단 배포하고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개념적으로 역사적으로 나누기에 좋아서 하는 표현이고 사실 이제 두 모델이 딱 나눠져 있는 경우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인 것 같다. 큰 프로젝트면 대부분의 경우 하이브리드로 간다.
github 등을 통한 배포, 코드 공유의 용이성, 공개성 등은 결국 AI가 가장 먼저 재능을 보인 분야가 코딩이라는 사실과도 연결된다. 코드는 실행 결과로 정답 여부가 즉시 검증되는 드문 지식 영역이다. 기계가 학습하기에 이미 가장 적합하고, 데이터가 그만큼 체계적으로 공개적으로 급속도로 쌓인 다른 분야가 없었다.
복잡성을 해결하는 구조가 워낙 자동화까지 잘 돼 있어서, 이제 그 실행 과정에서 사람은 빠지고 AI 에이전트가 완벽하지 않은 판단력으로도 코딩이 가능하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구축해 온 Git, CI/CD, 자동화 테스트라는 안전망이 AI의 실수까지 흡수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공학 외에 AI가 자동화하지 못한 다른 분야들의 빠른 자동화를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선행돼야 할지도 예측이 가능해진다. 법률, 의료, 금융 등 다른 영역이 AI 자동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AI의 지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수를 비용 없이 되돌릴 수 있는 ‘디지털 안전장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 산업의 자동화를 위한 선행 과제는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적 리스크를 가상 환경에서 격리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NVIDIA의 Omniverse와 같은 디지털 트윈 구축이 그 선행 조건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프트웨어 개발의 역사는 ‘물리적 실패의 비용’을 ‘디지털 시뮬레이션과 되돌리기의 비용’으로 대체해온 역사였다. AI 시대에 타 분야가 따라야 할 길은 지능의 모방이 아니라, 바로 이 ‘실패 비용의 전환’ 인프라를 각자의 영역에 구축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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