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특히 페북에서 글 잘 쓰는 사람들 보면 부러우면서도 이제 경계심이 든다.
글쓰기도 기술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많이 읽고 많이 쓰면 실력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많이 읽고 쓰는 과정에서 통찰과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는 게 일반적이라서, 혹은 그냥 잘 썼기 때문에 그들의 글이 많이 읽히고 공유되곤 한다. 근데 가끔 표현의 수려함이나 공유도에 비해 내용은 전혀 깊이가 없는 글들이 있다. 마치 콩나물이 안좋은 이유를 너무나도 멋지고 있어보이는 표현력으로 길게 써놓은 걸 감탄하며 읽었는데, 다 읽고 잠깐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초딩들도 다 하는 소리를 잘 포장한 것 뿐인 경우인 거다.
어떻게 생각의 깊이는 놔두고 표현의 기술만 이렇게 키울 수 있는지는 여전히 놀랍지만 짐작해보면 끔찍하기도 하다. 그 많은 책을 읽고 학교를 그렇게 오래 다니고, 나름 똑똑하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정받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객관적 진실이나 사회정의보다 그냥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이고, 그런 삶의 태도가 그 자리에 갈 때까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정의당 쪽에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왜 민주당이 국힘보다 나쁜지, 왜 윤석열이 이재명보다 나쁠 게 없는지, 이런 헛소리를 정말 너무 유려하게 쓴 글들을 많이 봤었다. 왜 그게 헛소리인지 지적해주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 글들만큼 고귀하고 철학적인 톤으로 반박해줄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움추러들더라.
대선에 패배했고 지방선거도 승리하지 못했으니 이재명 당선자가 책임지고 당권을 포기해야한다는 논리도 역시 유치하고 허술하고, 그냥 자기들이 계속 주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인데, 수려한 문력으로 이 개소리를 멋지게 써주는 사람을 아직 못봤다. 이건 포장하기 너무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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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생각해보면 이게 인지상정인가 싶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모 외에 나머지 모든 것도 최상일거라고 상상하고 모든 걸 주고 싶은. 사실 신인 혹은 비주류 정치인이 노풍같은 '바람'을 맞아 최고 위치까지 단번에 올라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사이다 발언 하나에 반해서 나의 모든 정치적 필요를 모두 완벽하게 채워줄 사람으로 생각하고 지지하다가 곧 실망하는 것처럼. 한 때 우리는 사람좋은 미소의 청춘콘서트 안철수에 열광했고 안정감있는 문재인의 오른팔 이낙연에 열광했다.
이게 정치에서 수시로 있는 일인 것 같은데, 최근 박지현 비대위원장 임명과 그 이후 일어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단 20대고, 여성이고, n번방 취재와 폭로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고, 대선에 이재명을 지지해줬고, '아기복어'라고 하고, 이런 점에서 한 5점 정도를 호의적 평가받았는데, 5점이 아니라 95점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비대위원장 자리에 앉혀버렸다. 당장 화제가 된 부분이 좋았으니 확인 안된 나머지 모든 점에서도 훌륭하겠지.
김한규 당선자 관련해서도 똑같은 움직임이 보인다. 일단 너무 잘생겼고, 뉴스공장 등 시사프로그램에서 나름 민주진영 신입으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던 분이 그 힘들었던 지난 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했으니 열광할만하다. 근데 당대표나 비대위원장으로 밀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실제로 훌륭한 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검증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제주 김한규 선거운동에 이낙연 전대표가 지원연설을 했었다. 당선 직후 첫 인터뷰가 이재명 후보의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제주 선거에 악영향이었다는 내용이었고. 민주진영의 흥망을 결정할지도 모를 자리로 올리기 전에 좀 더 살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수려한 외모/글빨에 너무 많은 걸 지레짐작하고 있는 경우일까봐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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