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복원

이혜훈 지명에 내가 좀 너무 흥분했다.

부족한 인재풀 보완, 경제민주화 전도사, KDI 출신이라는 정책 전문성, 친박에서 탈박으로 이어진 정치적 이력, 보수 진영에서 살아남기 위해 쌓아온 전투력과 인맥이 통째로 이동하고, 그 결과 이 한 수로 국힘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 조합이 가진 경제성과 효율에 반사적으로 환호했다. 그부분은 이미 많이 다뤘으니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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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며칠 생각해보니 그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의미가 생각났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지난 25년간 점차 사라진 건 여야간의 대화다. 아무리 싸워도 물밑에서는 비교적 서로에 대한 동지애 같은 것도 있고 동업자 의식 같은 게 있었다. 이게 협잡이냐 하면 아니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조율을 거치는 과정인데 대화가 필수다. 대화가 있어야 어른다운 정책 토론이 가능하다.

과거를 꼭 미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옛날엔 극렬히 싸우다가도 어차피 마지막엔 스케줄에 맞춰 협상과 조율이 이뤄졌다. YS 정부 때 여소야대로 국회가 마비될 것 같았지만 결국 예산은 통과됐고, DJ 정부 때는 DJP 연합으로 IMF를 같이 극복했다. 상임위원회에선 여야 의원들이 같은 분야 전문가로서 서로를 인정했고, 영수회담이 결렬돼도 원내대표끼리는 전화가 됐다. 법사위 야합이라고 욕먹던 것도 사실은 입법 기술자들끼리의 실무 조율이었다. 싸우는 것과 일 처리하는 것이 분리돼 있었다. 다들 어른이었고 일 끝내고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중동의 강경한 이분법이 정치 언어를 잠식한 시점이 김대중 정부 전후다. 이후 노무현을 거치며 정치적 반대는 ‘다름’이 아니라 ‘제거 대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고, 혐오는 수사에서 감정으로, 감정에서 행동으로 번졌다. 정치인은 살해 협박을 일상적으로 받았고 실제 폭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토론과 타협은 비겁함이나 배신으로 취급됐고, 입법은 조율의 결과가 아니라 저지와 파괴의 대상이 됐다. 서로 동의하는 사안부터 처리하고 나머지로 싸우는 방식은 사라졌고, 상대가 추진하면 일단 막고 보는 태도가 정치의 정상처럼 굳어졌다.

이혜훈 지명 이후는 이게 강제로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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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국힘 쪽은 지금 사정이 안좋다. 전체 세력도 위태롭지만 개인들도 이제 강한 보스도 없고 검찰도 없고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보수를 가르는 경계를 존중하지 않는다. 믿었던 지역감정도 과연 다음 선거때도 당선을 보장해줄지 이제 불분명하다.

근데 얼마전까지 윤 어게인을 함께 외치던 고인물 중 하나가 이재명 정부 장관으로 지명됐고 빛의 속도로 수락했다. 생각해보면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치고 야권에서 수락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진영을 생각하면 참아야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건 이혜훈이 박근혜 때도 못해 본, 홍준표가 이명박 때도 못해 본 입각이다. 장관직을 잘 하면 앞으로 정치길도 확 펴진다. 귀순한 이언주가 바로 한미협상하러 트럼프 만나러 갔던 걸 생각하면 민주진영은 정말 천장이 없는 곳이다.

국힘에서도 그래서 마구 동요 중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에서 “배신자는 제명!” “왜 이혜훈만!”까지, 난리가 나버렸다. 윤어게인을 외치며 극단을 달리던 사람들까지도 포섭의 대상이 돼버렸다. 다음은 또 누가 배신할 건지, 혹은 다음은 누가 영전될지 서로 감시하고 모니터라도 해야한다. 저쪽 인사들 사이에 조용한 대화가 시작된다. 고민의 토픽이 만일의 경우 이재명 정부와 자신의 개인적 정치 철학과 호환되는지.. 가 된다. 민주당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흠.. 흠… 혹시 모르니까..”하게 된다. 이미 교류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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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도 작은 폭탄이 터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연히 정확하게 자신의 포지션으로 들어오는 이혜훈에 대한 이언주의 견제가 시작됐고 “윤 어게인 하던 사람도 받냐”는 명분으로 평소에도 이재명 정책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사람들이 이재명 정부와 국민 사이에 허니문을 끝낼 기회가 왔다고 느껴서 사실 지금 들뜬 상태다.

그동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됐던 국힘 사람들에 대해 같은 국회 동료로서, 국정파트너로서 진지하게 ‘누구까지는 괜찮고 누구가 안되는거지? 기준을 어디다 누는 게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찔러야할 적이 아니라 그 중 누가 미래에 동료가 될 수 있을지 평가하고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순서는 대화다. 한국과 미국 정치에서 사라진 진영간 대화가 이혜훈 지명 때문에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이걸로 극단적 대립이 끝날 걸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단 이재명 대통령 때문에 양 진영이 서로에 대해 하지 않아도 됐던 고려를 할 수 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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