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얼 데이 루이스는 아마 생존하는 배우들 중 연기력, 인물 해석에 최고 경지에 다다른 사람일건데, 그래도…
데니얼 데이 루이스는 아마 생존하는 배우들 중 연기력, 인물 해석에 최고 경지에 다다른 사람일건데, 그래도 거의 모든 연기가 확실히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하지 싶은 놀라운 연기지만 분명 저 사람은 거장 배우다라는 느낌으로 감탄하며 보게 된다. 메릴 스트립도 거의 같은 과다.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잘할까 싶지만 분명 연기자다. 보면서 역시 연기 잘한다고 감탄하게 된다. 크리스챤 베일도 그런 쪽이다. 대부분의 역이 극단적인 인물들이고 극단적인 상황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을 연기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냥 굉장히 잘할 뿐이다. —- 반면 프란시스 맥도맨드 같은 경우 영화 시작 후 몇분 안에 배우를 잊고 그 인물을 보게 된다. 화킨 피닉스는 극단적 배역을 연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다. [조커]에서는 조커를 연기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미친 사람 느낌이다. 아무리 생소한 인물이라도 그냥 그 인물이 된다. '그래, 저렇게 미친 사람이면 저렇게 행동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리 이상한 인물을 연기해도 기본적으로 감정이입도가 높게 유지되는 배우다. —- 히스 레저는 둘 다 능했다. [브록백 마운틴]에서는 자연스런 연기의 정점을 보여주고 [다크나이트]에서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예측불가한 연기를 한다. 일부러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힘든 연기를 했다. 알 파치노는 초기작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후기로 갈 수록 다양한 시도를 했다. 사실 노년에 들면서 연기로는 특별히 볼게 없게 된 배우다. 점점 연기가 자기 자신의 캐리캐처처럼 돼갔다. 게리 올드만은 큰 영화에서는 독특함과 인상적인 연기를 추구하고 작은 소규모 영화에서는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 편이다. 초기작 [시드와 낸시]에서 굉장히 자연스런 연기를 볼 수 있다. 필립 시모어 호프만은 독특하게 거의 모든 배역에서 둘 다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바탕에 깔지만 거의 모든 역에서 독특한, 예기치 못한 연기를 하는 순간이 있다. —- 거슬러 올라가면 옛날엔 전부 극적 연기였다. 특히 연극 무대에서 가까이에 있는 관객과 맨 뒤에 있는 관객 모두에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큰 동작의 연기가 필요했다. 무성영화 시절에도 대사 없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놀라면 화들짝 놀라는 얼굴, 화나면 확 찡그리는 얼굴과 때리기 위해 팔을 번쩍 드는 동작이 들어갔다. 이게 꼭 나쁜 거냐 하면 그냥 다른 연기일 뿐이다. 데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사실 극적 연기에 가깝다. 동작, 표정 하나 하나가 인물과 감정의 선언이다. 훌륭한 연기를 하는데에 스타일이 꼭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로렌스 올리비에, 캐서린 햅번, 클라크 게이블 보고 연기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유성영화로 전환이 이뤄진 이후에도 극적 연기가 대세이다가 엘리아 카잔, 시드니 루멧, 존 카사베츠 감독 등 메소드 진영의 예술가들이 [워터프론트], [에덴의 동쪽], [12인의 성난 사람들] 등 영화에서 배우들에게 즉흥과 감정의 진실을 요구했다. 여기에 제대로 호응한 게 말론 브랜도였다. 1950년대부터 미국 영화 연기 스타일이 확 바뀌게 됐다. —- 이후로도 몇번의 유행이 왔다. 50년대 자연스러운 연기가 내면적 진실을 추구하는 연기였다면 70년대 사회적 실존을 찾는 [택시 드라이버]같은 영화들이 인기였다. 개인만 연기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사회 속에 그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90년대부터 리얼리즘의 극단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클로즈업이나 조명을 쓰면 가짜같아 보인다고 긴 롱테이크와 자연광을 사용하는 영화들이 늘었다. 연기도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억제된 반응의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 리얼리티 티비 예능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2010년부터는 실화에 실제 주인공을 쓰거나 비전문 배우를 쓰거나, 배우들에게 즉흥 대화를 주문하는 영화들이 늘어났다. [노매드랜드]를 찍은 클로이 자오 감독,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숀 베이커 등이 이 유행을 주도했다. —— 셰익스피어 마저도 이런 유행을 벗어나지 못한다. 원래 모든 셰익스피어 작품은 극적 연기로 표현됐지만 이안 맥켈렌, 주디 덴치, 케네스 브래너 등이 셰익스피어 자연스럽게 읽기 유행을 선도했다. —- 한국 배우들은 비교적 극적 연기가 아직 산재해있는 것 같다. 자연스런 연기를 추구하는 배우들도 어느 정도 양쪽을 섞는 편이다. 한국에 맞는 연기 문화가 있다.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 하정우, 설경구 등은 두 스타일을 모두 활용하는 편이고 유아인, 한석규는 비교적 인물 속으로 사라지는 연기, 황정민, 류승룡은 극적 연기의 대표주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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