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물리적으로 아름답다. 거대한 터빈과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자기장이 부드럽게 회전하고,…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물리적으로 아름답다. 거대한 터빈과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자기장이 부드럽게 회전하고, 그 회전 각도에 따라 전압이 완벽하게 싸인 곡선을 그린다. 한국처럼 전기 주파수 60헤르츠를 쓰는 나라는 1초에 정확히 60번, 산과 계곡처럼 매끄러운 파동이 반복된다. 발전소의 발전기는 서로 위상까지 맞춰 동기화돼 있어서, 전국 어디서든 그 파형은 거의 완벽히 같고 안정적이다. 전기 자체가 고급 오디오 신호처럼 정제돼서 온다고 보면 된다. 반면, UPS나 일부 인버터에서 나오는 교류 전기는 태생부터 다르다. 직류 배터리를 전자 스위치로 초고속으로 껐다 켰다 하면서 “싸인파 비슷한 모양”을 억지로 만든다. 전압은 비슷하고 주파수도 맞지만, 파형은 매끄러운 곡선이 아니라 층층이 깎아 만든 계단처럼 생겼다. 그래서 ‘시뮬레이티드 싸인파’ 혹은 ‘모디파이드 싸인파’라고 부른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여도, 확대해 보면 디지털 사진의 계단 현상처럼 티가 난다. 대부분의 기기는 이걸 써도 별문제 없다. 스마트폰 충전기, LED 조명, 일반 가전들은 잘 돌아간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나 냉장고처럼 모터나 고전압 변압기를 쓰는 기기는 미묘하게 효율이 떨어지고 열이 더 난다. 서버나 실험 장비처럼 전원 품질에 예민한 장치는 잡음이 늘거나 동작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특히 특정 오디오 장비는 이런 차이를 귀로 느끼는 몇 안 되는 분야다.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전원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음질의 토대, 음악의 시작점이다. 이들은 순수 싸인파를 만들기 위해 전용 AC 재생기를 들인다. 값도 다양하지만,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짜리까지 있다. 전용 전원선은 구리 순도 99.999%짜리를 쓰고, 콘센트는 오디오 전용으로 금도금된 제품으로 교체한다. 퓨즈 하나도 “음질이 열린다”는 이유로 오디오 전용으로 바꾸는데, 이게 개당 수십만 원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지한 이들은 아예 전용 차단기를 설치하고, 오디오룸에만 별도의 전기 배선을 깐다. 더 나아가 배터리 뱅크와 인버터로 집 전력망과 완전히 분리해, 오직 자기 시스템만을 위한 ‘독립 전력섬’을 만든다. 일부는 전기 진동이나 외부 노이즈를 막겠다며 전원 장치를 100kg이 넘는 거대한 아이솔레이션 트랜스에 물린다. 결국 같은 60Hz라도, 파형이 얼마나 매끄럽고 잡음이 없는지가 이 세계에서는 곧 음질이다. 일반인에겐 과한 집착처럼 보여도, 오디오광들에겐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 전기가 얼마나 ‘순결한지’가 음악의 숨결까지 바꾸는 문제다. 이들에게 전기의 품질은 숫자가 아니라 철학이고, 파형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다. 실제로 이 차이가 얼마나 음질에 영향을 주느냐는 또 다른 논쟁거리다. 어떤 장비에선 거의 체감이 없고, 어떤 세팅에선 미묘한 차이가 들리기도 한다. 중요한 건, 이건 적어도 광오디오 케이블을 만 원짜리에서 백만 원짜리로 바꿔도 전달되는 건 똑같은 순서의 0과 1뿐인 경우처럼, 물리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집착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오디오 세계에는 확인조차 불가능하거나, 거의 미신에 가까운 집착이 많다. 금도금한 나사, 방향이 표시된 전원 케이블, ‘에이징’이 된 콘센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교류 전원의 품질은 적어도 일정 수준까지는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고, 실제로 일부 장비에서는 잡음, 발열, 안정성에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순도 높은 전원을 만들려는 노력은, 과장과 허세가 섞여 있더라도,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