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북한과 한국은 2000년까지는 굉장히 살벌한 관계였다. 서울 불바다 같은 표현이 주기적으로 있었고 매번…

사실 북한과 한국은 2000년까지는 굉장히 살벌한 관계였다. 서울 불바다 같은 표현이 주기적으로 있었고 매번 한국에서는 쌀과 라면이 동이 났었다. 그냥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전쟁 공포로 인한 사재기가 잦았다. 미국도 실제로 94년에 북한을 폭격하는 작전을 어느 정도 진행했었고 한반도는 그냥 두려움이 아니라 실질적 전쟁 위험 속에 있었다. 이제는 북한이 뭘 해도 사재기는 없다. 내일 당장 북한 초음속미사일 같은 신무기를 선보여도 아마 장보는 날 아니면 아무도 쌀 사러 나가지는 않을 거다. 이유는 2000년부터 이뤄진 정상회담과 역설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성공이다. 정상회담 전까지는 진짜로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괴물이었다. 사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추월한 게 겨우 79년 일이기 때문에 2000년 당시 우리에게 북한의 비중감은 지금과 다르게 아직 컸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자꾸 우리를 죽이겠다는 무서운 이웃. 특히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소식은 주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프로파간다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전혀 이성적이거나 예측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근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만나는 모습을 보니 저쪽도 그냥 웃고 놀라고 땀흘리는 인간이었다. 그 순간부터 한국인들은 사재기를 멈췄다. 반대로 북한의 태도도 그 이후부터 확 바뀌는데, 한국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처럼, 북한도 한국과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확 사라졌다. 그 계기는 바로… 핵실험이었다. 1953년 휴전부터 핵실험 성공까지 북한은 끊임없이 미국의 침공 위협에 시달렸다. 실제로 미국은 계속해서 정탐선, 정찰기, 다양한 비밀작전을 끊임없이 수행했다. 거의 현실화 직전까지 갔던 클린턴의 94년 북 폭격 계획까지, 북한 지도자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미국이 미국에게 협조하지 않는 독재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미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바다 같은 표현이 잦았다. 두려움에 떠는 개는 더 크게 짖는다. 그래서 우리 일상 대화에서 '6자회담' 같은 단어가 기본 어휘였다. 핵실험 성공 이후 북한은 여유가 생겼다. 실제 90년대 기근, 아사 사태 등은 사실 북한에서도 굉장히 옛날 일이고 경제는 그 이후로 꾸준히 성장 중이다. 전력도 개인집 태양광 패널 등 덕에 공급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예 사라진 상태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상대에게 직접적 군사작전을 벌인 일이 단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잘 짖지 않는다. 상황을 뒤흔들기 위한 불바다 같은 표현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국 국내 정치에 커멘트를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한반도 상황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2000년대의 정상회담과 핵실험으로 만들어진 구도에도 이미 변화가 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이 큰 계기가 됐다. 한국도 군사강국이자 무기생산국가로 도약 중이고 북한도 이전의 골치거리에서 중-러-북 동맹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무기 수출이나 북한의 러-중 동맹 참여는 의외로 남북 관계와 큰 연결고리는 없다. 북한이 없었어도 우리는 수출 했을 거고 우리가 없었어도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에 파병했을 거다. 서로만 바라보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 큰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이제 눈을 돌려 제각기 독립된 존재로서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런 사실관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북한 국민들은 20년째 평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 국민들은 북핵보다 부동산에 수천배 더 관심이 있다. 북한 핵무장이 가져온 한반도 평화의 역설이다. 어떻게 보면 미니 냉전 구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이 균형을 깰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