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판타시아 업데이트: 여행을 하거나 멋진 곳에 다녀와도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않으면 몇년 뒤면 기억에서 완…

아판타시아 업데이트:

여행을 하거나 멋진 곳에 다녀와도 사진을 많이 찍어두지 않으면 몇년 뒤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많다. 일정 기록을 보면 다녀온 건 기억하는데 거기서 뭘 봤고 뭘 했는지는 부분부분 텍스트로 기억나고, 장면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기억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감정에도 큰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25살에 미친 듯한 열정적 사랑에 빠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 감정 자체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꼭 남이 남의 일을 서술해놓은 걸 그 당시에도 읽어서 알지만 몇 년 뒤 다시 읽는 것처럼. 이게 어떤 방식으로 또 나타나냐하면 사람을 잃어도 그 타격이 덜하다. 뇌리에 떠올라지질 않으니 감정도 꽤 금방 정리된다.

난 머리 속에서 이미지를 아예 못 떠올리는 것 같진 않고 아마 아주 아주 못하는 것 같다. 아판타시아가 극단에 달하면 꿈도 안 꿔진다는데 난 몇 년에 한번은 꾸는 것 같다.

아판타시아가 다른 증세들과 함께 오는 건지 다른 원인으로 이런 증세들이 나타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판타시아 그룹들에 들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판타시아만 있는 경우는 드물고 얼굴을 못알아보거나 자기 인생을 기억 못하거나 맛을 못보거나 정말 다양한 조합들이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보는 중이다.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이다.

이 나이에 이렇게 봇물 터지듯 자기 자신에 대한 수많은 미스테리를 공부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갖는 사람도 아마 드물 것 같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