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키운 건 아이폰만이 아니었다 애플의 공급망 전략은 자사의 안정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

애플이 키운 건 아이폰만이 아니었다 애플의 공급망 전략은 자사의 안정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중국 제조업 전체의 숙련도를 한 세대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애플은 혁신했고, 중국은 그 혁신을 체계로 만들었다. 애플은 중국에 아이폰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거의 모든 2차·3차 부품 공급사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애플에만 납품하지 말고, 다른 고객도 확보해라.” 이는 착한 자본주의적 배려가 아니라 냉정한 리스크 분산 전략이었다. 애플 입장에서는 미래의 제품에서 해당 공급사의 부품 구매를 중단할 경우, 그 회사가 파산해버리면 언젠가 그 회사가 필요할 때 다시 쓸 수가 없게 된다. 차라리 살아남은 상태로 기다리게 하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이 조건은 공급사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었고, 그 ‘다른 고객’ 대부분은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애플을 통해 훈련된 고숙련 공급사들과 손을 잡으며 비약적인 품질 상승을 이뤄냈다. 그 공급사들은 단순히 부품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정밀 가공·조립 공정·배터리 효율·방열·EMI 차폐 등 아이폰에서 축적된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신생 중국 기업들에게 전파하는 중계자이기도 했다. 그 덕에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출시 몇 년 만에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애플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키운 공급망을 통해 경쟁자의 국가 산업을 간접 육성하게 된 셈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형성된 고숙련 제조 기반은 스마트폰에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다른 산업 영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전기차(EV), 드론, 무기체계 등으로의 수평 확산이 두드러졌다. EV는 배터리, 센서, 열관리, 정밀가공의 총합이며, 이는 아이폰 부품과 공정 대부분과 겹친다. 드론 역시 경량화, 통신칩, 고정밀 금형, 내열소재 등이 핵심인데 이 역시 아이폰 생산 기반과 기술적으로 일치한다. 중국의 군사용 드론이 상업용 수준을 뛰어넘으며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전환의 속도와 기반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기술의 ‘파급’은 단순한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중국의 산업 체계 전반이 고도화된 구조로 재정렬된 결과다. 공급사 하나하나의 성장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스케일 업’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애플의 통제 밖에서. 이 현상은 단지 “애플이 중국에 생산을 맡겼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애플은 중국에 스킬을 이식했고, 시스템을 내장했으며, 그 결과물은 글로벌 경쟁상대로 되돌아왔다. 중국의 여러 스마트폰 기업이나 EV 스타트업, 드론 기업들은 단순한 카피캣이 아니다. 이들은 애플 생태계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역방향 기술학습을 진행한 파트너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애플이 중국 기술생태계를 생성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의가 아닌, 리스크 회피를 위한 부차적 조치의 부산물로. 이전에도 비슷한 전례는 있었다. 일본의 소니는 1980~90년대 고성능 부품 공급망을 갖췄지만, 그건 그 파트너들이 완제품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처음부터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급망과 자본, 내수 시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고, 애플은 그 엔진에 고급 연료를 붓는 역할을 해버렸다. 삼성은 이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한국의 하청 구조는 철저히 종속형으로 설계되었다. 삼성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든 공급망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국가 산업의 독립성과 수직 확장 가능성을 가로막기도 했다. 결국 애플은 자신이 만든 기술의 총합보다, 그 기술을 학습한 국가가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기술은 총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었고, 무기를 건넨 손은 결국 총구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오늘날의 애플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이지만, 그들이 공장을 세웠던 도시들은 이제 애플 없이도 스마트폰을 만들고, 전기차를 조립하며, 자국산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애플이 만든 건 단지 아이폰이 아니라, 애플 없이도 움직이는 제조국가였는지도 모른다. —- 패트릭 맥기의 저서 [Apple in China]는 애플이 중국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맥기는 애플이 2015년 한 해에만 중국에 55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당시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인 CHIPS Act의 4년간 투자 규모를 초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애플은 중국에서 수천만 명의 엔지니어를 교육하여, 이들이 중국 내 다른 산업에서도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https://www.smartkarma.com/ko/insights/episode-117-talking-apple-in-china-with-patrick-mcg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