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은 어쩌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군사력 세계 5위가 된걸까. 1990년대 중반,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경제 위기로 한국에 진 채무를 무기와 기술로 상환하게 된다. 이른바 불곰사업이다. 당시 러시아가 제공한 것은 단순한 재고 무기가 아니었다. T-80U 전차, BMP-3 장갑차, Igla 지대공 미사일, Ka-32 헬기 등 최신 무기를 통째로 한국에 넘겼다. 당시에 미국이 한국에게 허용하던 수준의 기술보다 다음 세대의 신기술이었다. 나로호 개발도 미국이 거부한 로켓 기술 이전을 러시아에게서 받았다. 전차와 장갑차는 실전 배치까지 됐고, 일부 장비는 한국형 무기 개발에 그대로 흡수됐다. 한국은 이걸 그냥 운용만 한 게 아니다. 한국은 T-80U 전차를 분해해 복합장갑의 설계 철학, 전술핵 고려된 내부 포격체계 일부, 차체 내부의 냉전형 생존성 구조까지 분석해버렸다. 장갑재 내부까지 분석하며, 한국의 군사 과학자들은 그 설계자의 머릿속을 재구성하는 수준까지 접근했다. 러시아식 무기를 책으로 공부한 나라와, 그 무기를 직접 그 나라 도움을 받아 굴려보고, 뜯어보고, 재설계까지 해본 나라는 전혀 다르다. 같은 시기 한국은 미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F-16 조립, K1 전차, 탄도미사일 지침 하의 기술이전을 받으며 NATO식 전술·장비에 익숙해졌다. 동시에 러시아의 전차, 장갑차, 미사일, 항공기, 그리고 극초음속 연소 개념까지도 직접 접하고 학습했다. 세계에서 양 진영의 무기체계를 동시에, 실전 운용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체화한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이건 단순한 기술교류가 아니다. 교리의 병렬 흡수다. 기술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쟁을 상상하는 방식 자체를 이중으로 체득한 경험이다. 그래서 한국은 소비자가 아닌 전략적 생산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 시선을 돌려보면, 지금 세계는 무기와 군사전략의 고갈기에 접어들고 있다. 러시아는 전시 체제로 탄약, 전차, 미사일이 바닥나고 있고, 미국조차 자체 보유고를 유지하기조차 빠듯하다. 특히 중국 해군에 비해 낙후되어 해군력 강화가 절실한 미국은 조선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에서 함정 건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한국 조선업계에 미 해군 보급선, 구축함, 특수함정의 공동 생산과 위탁생산이 논의되고 있으며, 캐나다, 일본 등이 있긴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능력 없이는 중국과 러시아와 북극 등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해상전력의 빠른 재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단지 무기 구매가 아니라, 전 세계 군사공급망이 한국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보듯, 드론과 정밀유도탄, 대공 방어 시스템, 초음속 미사일, 전자전 등 신기술의 대량 투입으로 인해 기존에 통하던 전술과 교리가 모두 재검토되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다. 대규모 기갑 돌파전, 전면 포격 중심의 전쟁 양상은 드론 정찰과 상공 타격 앞에서 무력화되고 있으며, 전쟁의 원리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이런 시대에 미국식이나 러시아식 한쪽 교리만 학습한 국가보다, 양 진영의 체계를 모두 운용·해석해 본 한국의 복합적 사고 능력과 세계 최고급 산업 생산력과 기술 융합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은 단순한 중견국이 아니라, 미래형 전술 실험국이자 전략 기술 조율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 동시에 러시아는 국운을 걸고 극동 개발과 북극항로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운하 대비 아시아-유럽간 항로를 30% 이상 단축시키는 미래 물류의 핵심이다. 러시아는 이를 자국 연해에 끌어들이고, 그 물류 기반 위에 에너지 수출, 자원 개발, 국경 경제 활성화, 인구 정착을 동시에 달성하려 한다. 북극항로와 극동지역은 러시아가 다시 ‘2위 열강’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보루다. 이걸 성공시키면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양대 전선에서 지정학적 카드와 자원 패권을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러시아는 딜레마에 빠진다. 서방은 제재 중이고, 중국은 믿을 수 없는 협력자다. 사할린 문제로 일본과도 갈등이 깊고, 연해주는 과거 청나라 영토라는 역사 기억 탓에 중국과도 부딪힌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모두와 껄끄러운 러시아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부담 없고 기술적으로 유능한 유일한 선진국은 한국이다. 한국은 러시아와 과거 식민지 경험도 없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줄곧 실용적 협력관계였다. 군사 충돌은 있었지만 간접적이었고, 이후에는 우주, 에너지, 무기, 기술 분야에서 협력만 있었다. 이건 관계설정이 비교적 백지상태라는 뜻이다. 지금 러시아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를 모색한다면, 한국은 유일한 무결점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 협력에서 실용적 이익을 분명히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국내 경제는 비정상적으로 토건 중심이다. 공항, 도로, 아파트, 산업단지 같은 하드웨어 중심 성장 모델은 이미 국내 수요 한계에 부딪혔다. 하지만 러시아 극동은 사람이 거의 없고, 땅은 넓고, 자원은 풍부하다. 도로, 철도, 항만, 산업단지, 주택, 병원, 학교—전부 건설 대상이다. 한국 건설사, 조선사, 철도사, 중장비 업체, 발전소 기업, 금융컨소시엄 모두에게 완벽한 확장 기회다. 한국 내부에서 막히고 있는 토건 사업의 출구가 러시아 극동에서 열린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 기회가 아니라 정치적 기득권까지 설득할 수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부동산 개발·시행·금융에 얽힌 한국의 기득권 구조는 이 출구를 원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개발을 국내에서 계속 할 수 없다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 무대가 러시아 연해주나 북극 항로 거점 도시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여기에 러시아는 연합과 공동체 운영에 능숙한 국가다. 벨라루스와는 연합국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CSTO·EAEU 등을 운영 중이다. 한국과도 동맹이 아닌, 분야별 연합형 협력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예컨대 ‘한러 북극경제특구’, ‘한러 조선 공동생산 플랫폼’, ‘극동 연해주 내 한국형 산업지구’ 같은 형태로 장기적 협력 구조를 묶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한국에게 토건 기반 산업의 해외 확장, 자원 안정 확보, 지정학적 다양화라는 전략적 기회를 열어준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라는 변수가 전략적 타이밍을 만들어낸다. 그는 동맹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비용 중심의 거래로 환산하는 인물이다. 지금 한국에 100억 달러 이상의 주한미군 주둔비를 요구하고 있지만, 동시에 러시아와의 협력 같은 움직임을 용인하거나 방조할 가능성도 크다. 그는 과거부터 러시아에 비판적이지 않았고, 동맹에 무조건적인 충성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잡으면 한국은 양측과 모두 유의미한 전략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된다. 동맹이라는 이름의 종속이 아니라, 생산자이자 협상자, 설계자로서의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양쪽 모두에게서 실익을 얻는 전략 독립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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