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에는 비마리스탄(bimaristan بِيْمَارِسْتَان, )이라고 불리는 공중보건과 복지…
이슬람 세계에는 비마리스탄(bimaristan بِيْمَارِسْتَان, )이라고 불리는 공중보건과 복지를 결합한 종합 의료·교육 기관이 있었다. 706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이슬람 세계에 중요한 도시들에는 대부분 지어졌다. 운영 체계와 서비스 수준이 당시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현대적이었다. 병원은 내과, 외과, 정신과, 안과, 피부과 등 전문 분야를 나눠 운영했고, 여성 환자는 여성 의사가, 남성 환자는 남성 의사가 치료했다. 의약품은 무료로 지급됐으며, 퇴원할 때는 환자가 다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회복 지원금까지 제공했다. 자금은 국고, 왕실 기부, 개인의 종교적 기부금(와크프)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이는 장기적이고 무료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했다. 건물은 환자 중심 설계가 뚜렷했다. 채광과 환기, 정원과 분수 등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요소를 포함했고, 병동은 질병별로 분리해 감염을 최소화했다. 깨끗한 침구와 의복이 제공되고, 물과 하수 시설을 갖춰 위생 수준이 높았다. 유럽 대부분이 수도원 기반의 제한적 치료를 제공하는 수준에 머무른 것과 달리, 비마리스탄은 국가·사회 차원의 의료 복지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제도와 시설 운영 방식은 후대의 의과대학, 종합병원, 공공의료, 전문 치료, 무료 의약, 환자 복지 개념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십자군 전쟁, 레콩키스타와 지중해 무역을 거쳐 이 개념이 유럽으로 전해졌다. 13세기 이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종합병원 형태가 나타난 배경이다. 비마리스탄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계의 의학 발전은 독립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잊혀진 고대 그리스 철학/과학/의학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었다. 유럽에서는 소실된 그리스 문헌도 이슬람 세계에는 번역본이나 원본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디오스코리데스 같은 고대 그리스 의학자들의 저술이 아랍어로 옮겨졌고, 단순 번역을 넘어 주석·비판·보완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7-9세기에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Bayt al-Hikma) 등에서 그리스어, 시리아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문헌이 대규모로 아랍어로 번역됐었다. 이 과정에서 동서양의 문명 기록을 집대성해 융합하는 과정을 겪었다. 의학 교육도 비마리스탄의 핵심 기능이었다. 병원 안에 도서관과 강의실이 있었고, 학생들이 실제 환자를 돌보며 수련했고,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야 의사로 인정받았다. 이는 훗날 유럽에서 의과대학과 국가 면허 제도가 정립되는 기반이 됐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은 증례를 기록해 후대에 전했다. 치료법은 약물 요법뿐 아니라 식이 요법, 물리치료, 음악 치료, 심리 상담 등 다양했다. 비마리스탄에서 활동한 의사들이 남긴 아랍어 의학서는 11~13세기경 라틴어로 번역돼 유럽 의대의 교재가 됐다. 이븐 시나(아비센나)의 《의학정전(캐논 오브 메디신)》은 17세기까지 유럽 의과대학 필수 교재였고, 알자흐라위(알부카시스)의 외과서 《알타스리프》는 근대 외과 수술 기법의 기초가 됐다. 약물·외과·정신 치료·음악 치료·식이요법을 통합한 다학제 접근은 당시 유럽에선 낯선 개념이었으나, 후대 르네상스 의학에서 통합 진료 발상에 영향을 줬다. 결국 11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유럽 의학 교육·병원 운영·외과 기술·의학 연구 체계의 상당 부분이 이슬람 의학을 토대로 재편됐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시기의 아랍-이슬람권 의학 전승이 없었다면, 서양 의학의 근대화는 최소 수백 년 늦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