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사실 존재하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이탈리아 반도는 천…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사실 존재하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후, 이탈리아 반도는 천 년 넘게 수많은 도시국가, 왕국, 교황령, 외세의 점령지로 나뉘어 있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이탈리아인’이라기보다 나폴리 사람, 피렌체 시민, 베네치아 상인처럼 지역 중심으로 인식했다. "이탈리아"라는 말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요동 반도의 요동처럼 지리적 개념에 가까웠다. 1861년 통일 때에도,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이탈리아인은 2-3%에 불과했다. 천 년 간 다른 국가였던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드어, 베네토어, 남부의 나폴리 방언, 시칠리아어 등은 같은 계열의 언어이나 표준 이탈리아어와 상호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토스카나 지역 피렌체에서 사용하던 언어가 표준 이탈리아어가 됐고, 그 후 수십 년간 공교육을 통해 전국에 퍼뜨렸다.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로서 ‘이탈리아’라는 개념은 사실상 근세에 들어서야 비로소 상상되고 창조된 것이다. 그 출발점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1796년부터 1799년까지 이탈리아 반도 북부와 중부를 빠르게 점령하며 오스트리아 제국과 교황령의 지배를 무너뜨렸고, 그 위에 ‘치살피나 공화국’과 ‘이탈리아 공화국’ 같은 위성 국가들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이탈리아 왕으로서 직접 통치하는 ‘이탈리아 왕국’을 선포했고, 수도를 밀라노로 삼았다. 나폴레옹이 만든 국기가 지금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삼색기(녹-흰-빨강)였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이탈리아’라는 단어를 단순한 땅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이자 공동체로 상상하게 만든 강렬한 실험이었다. 사실상 프랑스 혁명식 제도와 군복, 국기, 헌법 등을 그대로 복제해서 시작했다. 바꿔말해 나폴레옹이 침공하기 전까지 이탈리아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1796년 나폴레옹의 이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는 다시 분열되었고, 교황령과 오스트리아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한 번 경험된 ‘하나의 독립 이탈리아’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유럽 전역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자 이탈리아에서도 다시 ‘이탈리아’라는 이름 아래 통일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가리발디, 마치니, 카보우르 등 민족주의자들이 이끈 통일운동은 나폴레옹의 실험을 사실상 계승한 것이었다. 외세를 몰아내고, 군사 행동과 행정 통합을 통해 빠르게 반도를 통일하는 방식도, 하나의 국가를 선포하는 방식도 그때의 기억을 닮아 있었다.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던 1860년대는 조선에서는 철종 말기에서 고종 초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1863년 철종이 사망하고 12세 소년 고종이 즉위했으며, 실질적인 정치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여 주도했다. 흥선대원군은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며 쇄국정책을 강화하고,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대대적인 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 세도 정치 척결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 무렵 조선은 프랑스와 미국 등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를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고, 그에 따른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같은 외세와의 군사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의 긴장된 상황이었다. 고종은 1889년에 신생국 이탈리아와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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