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였지만, 중세 이후 힌두교와 이슬람의 영향 속에 사실상 불교 전통은 뿌리째 사라졌다. 불…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였지만, 중세 이후 힌두교와 이슬람의 영향 속에 사실상 불교 전통은 뿌리째 사라졌다. 불교 성지들은 순례지가 되었지만, 히말라야 지역, 네팔, 시킴, 스리랑카 외에 인도 대륙 본토에 불교를 신앙하는 공동체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1956년, 역사가 바뀌었다. 헌법 기초자로 불리던 비.알. 암베드카르(B. R. Ambedkar, 1891–1956), 불가촉천민 출신의 법학자이자 정치 지도자가 50만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불교로 집단 개종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힌두교의 카스트 질서를 거부하고, 평등과 자유, 합리주의의 종교로 불교를 재해석했다. 암베드카르는 불교를 신비주의가 아니라 사회 개혁과 해방의 언어로 다시 세웠다. 그는 제자들에게 “나는 힌두교를 버리고, 결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이끌어냈다. 나바야나 불교의 특징은 수행과 교리에서 뚜렷하다. 전통 불교가 명상과 계율, 출가 공동체 중심이었다면, 나바야나는 재가 신자들의 사회 참여와 실천을 중시한다. 초자연적 세계관이나 업보·윤회의 강조를 줄이고, 대신 불평등 철폐와 인간 존엄을 해탈로 본다. 암베드카르가 제시한 22계명은 신자들에게 카스트 차별을 거부하고, 힌두 신들을 섬기지 않으며, 불교를 통해 인간 평등을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나바야나는 수행보다는 교육·조직·사회운동과 밀접하게 결합된 형태를 띤다. 사원의 모습도 다르다. 히말라야 지역 티베트 불교 사원처럼 화려한 불화와 의식이 펼쳐지는 곳이 아니라, 나바야나 불교 사원은 대체로 단순하고 근대적이다. 붓다의 조각상은 중심에 놓여 있지만, 장엄한 의식보다 신도 집회·교육·강연이 더 활발하다. 불교 의례 대신 독립기념일이나 암베드카르 탄생일 같은 사회적 기념행사가 사원의 주요 일정이 되기도 한다. 이 운동은 단순한 종교 개종이 아니었다. 수천 년의 차별을 견뎌온 달리트 공동체가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사회 혁명이었다. 불교는 다시 인도의 땅에서 ‘살아 있는 종교’로 자리잡았고, 그 흐름은 오늘날 800만 명 규모의 신앙 공동체로 이어지고 있다. 인도 불교도의 대부분은 바로 이 ‘나바야나 불교 navayāna’, 즉 암베드카르가 연 새로운 불교 전통에 속한다. 이를 상좌부 불교, 대승불교에 이어 신승불교(新乘佛敎)라고 부른다. 다른 어느 불교 종파보다도 힌두교에 대한 안티테제를 자처하고 인도의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타타 그룹, 고드레지 그룹 등 대재벌을 배출한 조로아스터교도 파르시 족이나, 인도 인구 0.4%에 불과하지만 인도 전체 GDP의 5-15%를 차지한다고 추정되고 보석 가공업 70%를 차지할 정도로 상업/금융에서 비중이 큰 자이나교도, 인도 내에서 보다 해외 디아스포라 중 억만장자들이 많은 시크교도들과 달리 나바야나 불교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차별받는 불가촉천민 출신들이라 아직까지 재계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고 카스트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운동 쪽으로 활동을 집중한다. 이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들은 여전히 구조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 정부의 국가범죄기록국(NCRB) 통계에 따르면, 매년 수만 건의 ‘반달리트 범죄(atrocities against Scheduled Castes)’가 공식 보고되며, 살인·강간·폭행·재산 파괴 등이 포함된다. 2020년 기준으로만 50,000건 이상이 접수되었고, 이는 하루 평균 130건꼴이다. 그러나 기소와 재판으로 이어져 유죄 판결이 나는 비율은 여전히 낮아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교육과 생활 조건에서도 격차는 뚜렷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달리트 여성의 문해율은 전체 평균보다 훨씬 낮고, 많은 농촌 지역 학교에서는 여전히 미묘한 분리 관행이 남아 있다. 달리트 마을이 공공 수원이나 보건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사례도 보고된다. 이처럼 달리트들은 인구의 16%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제도적 보호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불교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차별받는 이들의 해방의 기치로 귀환한 것. 이것이 오늘날 인도 불교의 얼굴이다. 종교라기보다 사회운동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억압받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덜기 위해 불교에 의지하는 모습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업을 더 쌓는 고리를 끊으려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 곧 고통의 소멸을 향한 길에서 크게 벗어난 부분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