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사냥꾼들

냉전 시절 전차 사냥의 제왕으로 불린 항공기는 단연 A-10이었다. 이 기체는 애초에 “소련 기갑부대가 유럽으로 밀고 내려올 때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태어났다. 빠를 필요도,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느리게 날며 오래 머물고, 가까이서 보고, 확실하게 부수는 것이 목표였다.

A-10의 상징은 30mm GAU-8 기관포다. 분당 약 3,900발을 쏟아내는 이 포는 단순히 탱크 한 대를 노리는 무기가 아니었다. 행군 중인 전차 대열, 보급 차량, 보병 집결지를 한 번의 접근으로 갈아버리는 면적 화력이었다. A-10에 사냥당한 전차들은 구멍이 워낙 많아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 매버릭 미사일과 폭탄까지 더하면, A-10 한 대가 한 번 출동해 수십 대의 차량과 수백 명 규모의 지상 전력을 무력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평가됐다. 느리지만 오래 체공하며 같은 전장을 반복해서 두들길 수 있었고, 조종사는 전장을 눈으로 보며 판단했다. 이 시기 기준으로 보면 A-10은 확실히 “전차 사냥의 제왕”이었다.

하지만 이제 전장은 변했다. 휴대용 대공미사일이 보편화되고, 레이더와 센서가 촘촘해지자 저고도에서 오래 머무는 기체는 곧 표적이 됐다. 기관포로 접근해야 하는 방식 자체가 위험해졌다. 이때 등장한 해법이 고고도에서 정밀유도무기를 투하하는 전폭기였다. F-16, F-15E 같은 기체들은 전차를 직접 보지 않아도 좌표와 센서로 파괴할 수 있었고, 생존성은 훨씬 높았다. 다만 이 방식은 “전차 사냥 전용”이라기보다는 범용 타격이었다.

그리고 실제 전차 사냥의 중심은 헬기로 넘어갔다. 공격헬기는 빠를 필요가 없었다. 능선 뒤에 숨어 있다가 고개만 내밀고 미사일을 쏘고, 다시 숨었다. 공격헬기는 전차들끼리 싸울 때 사용하는 전술을 사용한다. 상부를 노리는 전차 전용 미사일은 기관포보다 훨씬 확실했고, 목표를 오래 추적할 수 있었다. 전투기는 방공망을 정리하고, 헬기는 마지막으로 남은 기갑을 정리하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A-10이 사라진 게 아니라, 방공망 사냥이라는 임무가 더 잘 맞는 플랫폼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 흐름은 자연에서도 비슷하게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모기 사냥의 주역을 거미로 생각하지만, 실제 효율의 왕은 잠자리다. 연구에 따르면 잠자리는 같은 시간 대비 모기 포획 효율이 거미보다 열 배 이상 높다. 유충일 때부터 무서운 사냥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미는 그물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의존한다. 반면 잠자리는 공중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모기를 추적하고, 시야로 확인하고, 즉시 요격한다. 먹이가 그물로 들어오길 기다리는 존재와, 먹이를 찾아다니며 사냥하는 존재의 차이다.

그리고 잠자리는 앞날개와 뒷날개를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이 덕분에 급정지, 급선회, 공중 정지에 가까운 동작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속도가 아니라, 미세한 기동의 정확성 문제다. 잠자리는 먹이를 쫓아가기만 하지 않는다. 관측된 연구에 따르면 잠자리는 모기의 현재 위치가 아니라 “다음 위치”를 계산해 진로를 끊는다. 인간 전투기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할 때 리드(lead)를 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빗맞추는 추격전이 아니라, 한 번의 접근으로 포획 확률이 매우 높다.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는다.

공격헬기가 전차를 잘 잡는 이유와 정확히 겹친다. 저고도에서 오래 머물고, 지형을 활용하고, 목표를 눈으로 추적하며, 다음 움직임을 예측해 끊어버린다. 전투기처럼 빠를 필요도 없고, A-10처럼 무식하게 두들길 필요도 없다. 필요한 건 표적과 같은 공간에 오래 있으면서, 가장 잘 보이는 시선과 가장 잘 꺾는 기동이다.

물론 이제 드론이라는 전차 사냥의 새 강자가 등장했기에 공격헬기도 후방으로 물러나, 사냥꾼에서 지휘, 연결 노드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