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부터 독재자 상대로 대선에 나섰다 수십 년 좌절한 김대중, 험지 고향에서 출마했다가 지역주의에 무너…
젊었을 때부터 독재자 상대로 대선에 나섰다 수십 년 좌절한 김대중, 험지 고향에서 출마했다가 지역주의에 무너진 노무현, 기득권의 모함에 수년간 재판받고 암살까지 당할 뻔한 이재명. 이 셋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정치 실력만으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버티고 살아남은 ‘역경’이 그들에게 대통령이 될 이유를 만들어줬다. 국민은 그걸 보고 마음을 먹는다. “이번엔 떨어져도 언젠가는 저 사람이 대통령 되겠구나.” 그렇게 ‘필연성’이 생긴다. 이재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민주당에선 이게 안 보였다. 다 괜찮은 사람들인데,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은 없었다. 조국은 다르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 셋이 다 짓밟혔다. 여기까지 당하고도 “그래도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게 필연성이다. 이번 선거에서 벌써 몇번째인지 모를 당내 집단따돌림을 극복하고 드디어 당대표가 된 정청래. 예전엔 그냥 비주류로서 외롭고 곤란한 정치인이었다. 원내대표조차 해보지 못한 채 늘 소외됐다. 별 이유없이 공천 배제된 적도 있고, 그의 차례였고 일단 되고나니 누구보다 시원하게 수행해냈던 자리인 법사위 위원장이 되는데에도 조용한 훼방으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 그러려니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박찬대 지지층에서 옛날 친낙이 맥락없이 아무 때나 이재명 '형수 욕설'을 거론하듯, 너무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대대적으로 정청래를 흠집냈다. 예전의 조용한 왕따와는 다르다. 게다가 대의원을 통해 드러난 의원들의 당권 장악 속셈도 당원들에 의해 무산됐다. 이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청래는 개인적 곤경을 넘어서, 민주당 안의 기득권과 싸운 인물이 돼버렸다. 그것도 한 번도 공격적으로 반응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계속된 의혹 제기, 재판 등으로 슬슬 약해져가던 이재명의 결백에 대한 지지자들의 확신과 의지를 다시 세워 준 것도 역설적으로 친낙파의 끊임없는 악랄한 공격이었고 체포동의안 찬성이었다. 그래서 사방이 적으로 쌓인 상황에서 돌파구는 단식이라는 더 심한 역경이었다. 정청래 박찬대 둘 중 누가 돼도 상관없다던 다수 당원들이 정청래 죽이기를 보고 판단 내렸다. "아. 우리 당에도 기득권이 있었어. 이것들이 이재명 대통령 발목 잡겠네. 이걸 해결할 적임자는 그들이 집요하게 공격하는 사람이구나." 역경은 시험이다. 역경을 만난 인물의 태도를 보고 대중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한다. 정치적 수사와 연기와 모순이 역경을 만나면 적나라하게 벗겨진다. 대중은 역경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정성을 찾는다. 마음을 줘도 배신하지 않을 사람인지 확신한다. 사실 그릇이 되는 정치인에게 가장 큰 축복은 극복할 수 있는 최대치의 시련이다. 아직 이걸로 정청래에게 대통령 도전 자격이 생겼다고 선언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꿈꿔볼 자격”은 생겼다. 민주진영 지지자들 상당수가 수긍할 계기가 생겼다. 아무런 갈등없이 모두가 함께 웃으며 51:49 표차로 당선됐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나머지는 정청래 하기 나름이다. 동시에, 그를 밟아온 무리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중요하다. 김대중, 노무현, 이재명도 그랬다. 그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실력만이 아니라, 그들을 짓밟던 적들의 존재였다. 마찬가지다. 정청래를 더 밟을수록, 더 큰 인물이 된다. 이유 없이, 악의적으로 밟으면 밟을수록, 더 강해진다. 정청래 대통령 만들기 싫으면, 이제 그만 좀 놔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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