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팍 냔 Qhapaq Ñan

카팍 냔 Qhapaq Ñan. 남미 서해안을 잇는 4만 킬로미터의 도로망이다. 잉카 제국이 100년만에 제국으로 성장한데에는 이 도로망의 힘이 컸다. 현대에도 하나의 체계로 묶이기 힘들 방대하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영토를 하나로 묶었다. “길”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대륙을 묶는 공공 인프라 시스템에 가깝다.

잉카에는 바퀴도 없고 철제 도구도 없었다. 말이나 소 같은 운송 동물도 없었다. 탑승이 불가하고 적재량에 한계가 있는 라마가 있을 뿐이었다. 사람 다리 근육으로 대부분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도 절벽에는 계단을 파고, 고산에는 배수로를 만들고, 늪지와 사막에는 노선을 달리 잡아 길을 이어 붙였다. 산이 있으면 돌아가지 않고 넘었고, 강이 있으면 돌다리를 놓거나 섬유로 현수교를 만들었다.

안데스 고산과 협곡에서 도로를 유지하는 일은 지금도 쉽지 않다. 그래도 잉카는 대륙 규모의 길을 만들고 유지했다. 더 대담한 건 재료 선택이다. 일부 다리는 돌이 아니라 풀을 꼬아 만든 밧줄 현수교였다. 자연소재라 영구 구조물이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 전제를 제도화했다. 다리는 “영구히 버티는 구조물”이 아니라 “매년 새로 짓는 공공시설”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 시스템의 진짜 핵심은 기술보다 행정이다. 이렇게 방대한 도로망은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 눈과 비, 산사태가 반복되는 환경에서 길을 계속 쓸 수 있게 하려면 상시적인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잉카는 이를 국가 의무 노동 제도로 조직했다. 특정 지역의 주민이 정기적으로 도로와 다리, 창고를 관리하도록 역할을 배분했고, 중앙은 그 상태를 기준으로 행정과 군사 이동을 설계했다.

잉카의 영토는 평지가 아니라 해안에서 곧장 고산지대로 치솟는 구조였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카팍 냔은 하나의 길이 아니라, 해안 도로와 산악 도로를 각각 구축하고 그 사이를 집요하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계절과 기후에 따라 더 빠르고 안전한 노선을 선택할 수 있었고, 덕분에 병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 동시에 해안의 어류, 계곡의 농산물, 고산의 저장 작물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순환했다. 해안과 고산을 하나의 생산 시스템으로 묶어낸 것이다.

바로 이 행정이 제국 운영이었고 제국 그 자체였다. 도로를 따라 물자가 이동했고, 소식은 계주 형태의 전달망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기록 문자가 거의 없던 사회였지만, 길과 창고, 인력이 하나의 행정 언어처럼 작동했다. 도로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를 떠받치는 신경망이었다.

이 도로망은 제국을 운영하게 해준 동시에, 남미 대륙에 경쟁자가 거의 없던 상황에서 유럽인들이 침입했을 때 빠른 점령을 가능하게 했다. 이미 잘 닦여 있는 길 위로 소수의 병력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묶던 신경망이, 외부 세력에게는 침투로가 됐다.

잉카 멸망 후 1990년대까지 카팍 냔은 거의 잊혀졌다. 이 길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올린 인물이 페루의 작가이자 장거리 보행가인 Ricardo Espinosa, 별명으로는 ‘El Caminante(걷는 사람)’라 불린 리카르도 에스피노사다. 그는 이 길을 연구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직접 걸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체계라고 봤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전설이거나, 아니면 시간이 영원히 빼앗아간 현실이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그는 안데스 전역을 홀로 걸으며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을 직접 답사했다. 지도도 불완전했고, 많은 구간은 현지인조차 존재를 잊고 있었다. 고고학자와 국가 기관이 끊어내지 못했던 조각들을, 한 개인의 발로 다시 이어 붙인 셈이다.

그 관심은 국경을 넘었다. 2001년 페루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제안했고, 이듬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가 합류했다. 6개국이 하나의 유산을 공동 등재하는 건 유네스코 역사상 처음이었다. 2014년, 12년간의 협상 끝에 등재가 확정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그 자체로 정교한 공학적 업적”이라 평했다. 오랫동안 대립해온 나라들이 하나의 문화유산 앞에서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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