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코크런 제독. 1775년생. 귀족으로 태어나 영국 해군 소속으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을 무찌르는데…

토마스 코크런 제독. 1775년생. 귀족으로 태어나 영국 해군 소속으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우고 바로 정치에 도전. 선출직으로 의원이 됐지만 증권 거래소 사기에 연루되고 40살 되기 전 큰 불명예로 왕립 해군 계급, 기사직 등이 박탈됨. 전혀 좌절하지 않고 신문에 "훌륭한 해군 장교가 무소속이 됐으니 관심있는 나라는 연락달라"는 광고를 내고 바로 칠레로 불려감. 칠레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해군을 막 조직하던 참. 칠레 시민권을 받고 해군 총사령관이 돼서 칠레 해군을 영국/미국 등 출신 장교들로 채우고 영국 해군 스타일로 조직하고 운영. 지금까지도 칠레 해군은 영국 해군과 친함. 칠레 해군을 이끌고 페루와 칠레의 독립을 도움. 대인관계 문제와 불화로 칠레를 떠남. 이때 47세. 다음은 브라질로 건너가 브라질 해군 총사령관이 되어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전쟁에 참가. 여러 공을 세우고 브라질 제국으로부터 작위도 받음. 그러나 마라뇨 지역을 두 번이나 브라질을 위해 점령했던 전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인근 상선들을 격침시킴(???). 그러고 브라질을 떠나 영국으로 귀환. 이때 50세. 오토만제국에게서 독립하려는 그리스 해군에 고용돼 전공을 세우고 그리스 독립 후 다시 영국으로 귀환. 이때 53세. 마침 제9대 던도날드 백작이던 아버지 사망으로 작위를 이어받고 영국 왕실의 사면을 받음. 영국해군에서 계급도 복위. 너무 과격하다는 평 때문에 실제 작전을 맡지는 못했지만 계속 영국해군에서 복무. 결국 당시 영해군에서 두번째로 높은 계급 서훈. 1860년 85세에 사망. 지금도 매년 5월에 칠레 해군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그의 묘지에 참배를 감. —- 사실 국가주의가 지금처럼 뚜렷하게 정립되기 전에는 이렇게 그냥 유럽 전체, 혹은 전세계가 자기 안마당이었던 것. 초기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미국군 총사령관 역할도 영국군에서 막 전역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찰스 리 장군이 맡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