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군함 브레타뉴의 갑판 위 공기는 숨 막히게 무거웠다. 아침부터 영국 함대가 항구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

프랑스 군함 브레타뉴의 갑판 위 공기는 숨 막히게 무거웠다. 아침부터 영국 함대가 항구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고, 동료들 사이엔 말 없는 불안이 흘렀다. 최후통첩이 오가던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우방국 영국이 히틀러를 놔두고 우리에게 발포할 리는 없다’는 희망에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귀청을 찢는 포성이 뒤따랐다. 첫 포탄이 브레타뉴의 현측을 갈라놓자, 강철이 비명처럼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충격으로 온몸이 던져졌고, 곧 폭발과 함께 뜨거운 불길이 밀려들었다. 동료들이 쓰러지고, 누군가는 불붙은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몸을 던졌다. 연기와 화염 속에서 명령은 들리지 않았다. 기관실은 이미 불길에 잠겼고, 배 전체가 기울기 시작했다. 발밑 금속이 끊임없이 떨리며, 물이 스며들 때마다 차가운 소금물과 끈적한 피가 뒤섞여 발목을 적셨다. 숨을 몰아쉬며 갑판으로 올라가자, 불타는 기름이 바다를 덮고 있었고, 바다로 뛰어든 이들의 몸이 다시 화염에 휩싸였다. 그 모든 혼돈은 10분도 되지 않아 닥쳤다. 친구와 동료가, 내가 몸담았던 배가, 순식간에 불길과 파편 속에 사라졌다. —- 그러나 이 비극은 단순한 오인 사격이나 우발적 충돌이 아니었다. 배경에는 냉혹한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1940년 여름,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프랑스 해군은 여전히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기지에 주둔해 있었다. 영국의 처칠 정부는 이 함대가 독일의 손에 넘어가 영국 본토를 위협하는 시나리오를 가장 두려워했다. 협상과 중립국 이전, 심지어 자침(自沈)까지 요구했지만 프랑스 측은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프랑스 함대는 기습적으로 빼앗는데 성공했으나 알제리에서는 실패했다. 결국 영국은 선택지를 전부 소진한 뒤, 발포를 명령했다. 그리하여 메르스엘케비르Mers-el-Kébir 항구에서 벌어진 포격은, 군사적으로는 독일의 해군력 확대를 막았지만,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깊은 불신을 남겼다. 1940년 7월 3일 이날 영국군의 공격으로 프랑스 해군 1297명이 사망했다. 전쟁의 논리가 한순간에 동맹국을 적으로 만들었고, 불과 3시간의 혼돈은 그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앙금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