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ChatGPT에서 다양한 사진과 그림을 지브리 화풍으로 변환해놓고 감상하는 지브리화 프로필 사진 만들기가 유행했다. 비슷한 작업을 19세기에 집요하게 반복한 화가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다.
반 고흐는 고립된 천재라기보다,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며 스스로를 단련한 화가였다. 당시 화가 교육에서 작품을 보고 따라 그리는 일은 기본 과정이었고, 반 고흐도 이를 꾸준히 이어갔다. 다만 그는 이를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번안, 혹은 즉흥 연주에 가깝게 여겼다.
특히 생 레미 요양원에 머물며 모델을 구할 수 없었을 때, 동생 테오가 보내준 판화와 복제화는 중요한 재료가 됐다. 그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악보 삼아, 자신의 색채와 붓질이라는 음색을 입혀 다시 연주하는 일을 즐겼다.
1886년, 33세의 반 고흐는 테오와 함께 파리로 이사한다. 그곳에서 아방가르드 미술계와 교류하며 일본 우키요에에 깊이 빠져든다. 파리에서 수집한 일본 목판화의 영향은 곧바로 작품에 드러난다. 히로시게의 목판화를 바탕으로 [Flowering Plum Tree], [Bridge in the Rain] 같은 그림을 그렸고, 게이사이 에이센의 판화를 캔버스로 옮기며 일본식 선과 평면적 색채를 실험했다.

1888년 남프랑스 아를로 내려간 뒤에는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보낸 [Breton Women in the Meadow]를 보고 이를 수채로 다시 풀어낸 [Breton Women and Children]을 제작한다. 검고 굵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나누고, 내부를 평면 색으로 채우는 방식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킨다. 이 시기 베르나르의 양식은 폴 고갱과 반 고흐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줬다.

아를 시절과 이어지는 생 레미 요양원 시기, 정신적 혼란 속에서도 그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농부 그림에 집착했다. 밀레의 [The Sower]를 자기식 색채와 붓질로 다시 만든 [The Sower], 그리고 [The Diggers]를 바탕으로 한 [Two Farmers Digging]은 노동이라는 주제를 반 고흐의 언어로 다시 쓴 결과였다.



생 레미에서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Pièta] 같은 종교화를 모사했고, 렘브란트의 [The Raising of Lazarus]도 자신의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원작의 명암과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밀도는 훨씬 거칠고 직접적으로 바뀐다.


요양원을 떠나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한 뒤에는 구스타브 도레의 목판화를 바탕으로 [The Round of Prisoners]를 그린다. 원을 그리며 걷는 죄수들의 모습에 감금과 탈출 욕망이 겹쳐진다. 그리고 사망하던 해에도 야콥 요르당스의 소 그림을 바탕으로 한 [Cows]를 남긴다.


반 고흐는 정말 모사에 진심이었다. 스타일 변환이라는 걸 자신의 스타일로 삼은 화가였다. 우리가 이 그림을 지브리 스타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듯 고흐도 똑같은 욕구를 갖고 있었다. 지금 살아있었으면 AI 도구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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