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GR 은혜로교회

피지에 갈일이 생기면 현지에만 있는 브랜드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성공적으로 현지 경제를 장악한 브랜드가 GR이다. 공항 근처 상가에 붙은 트루마트 간판, 난디 시내의 스노우하우스, 수바 길목의 그레이트웍, 외딴 주유소의 모빌 간판 옆에도 GR 로고가 들어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다른 브랜드들이지만, 줄기를 따라가 보면 모두 하나의 그룹으로 이어진다. Grace Road. 한국에서 은혜로교회로 알려졌던 바로 그 집단이다.

단순히 사업을 크게 한 정도가 아니다. OCCRP 자료와 피지 정부 문서를 보면, GR은 피지에 10년 동안 9개 법인을 세웠고, 신도 339명의 자금 2,253만 피지달러에 국가 개발금융 대출까지 끌어모아 농업·유통·외식·건설·주유소로 사업을 퍼뜨렸다. 약 400헥타르 농장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자신들의 마트로 공급하고, 주유소부터 카페까지 한 섹터를 ‘수직 통합’한 기업처럼 움직인다. 남부 도로축을 달리다 보면, 피지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상당 부분이 GR 손을 거친다는 사실이 체감될 정도다. 실제 피지 경제를 20-30% 장악하진 못했지만 노출 정도로는 피지의 삼성같은 존재다.

이 압도적인 확장의 동력은 정상적 기업 운영이 아니었다. 신도 300여 명이 여권을 빼앗긴 채 임금 없이 일했고, 이 인건비 0원 구조가 현지 자영업자와 기업들을 시장에서 밀어냈다. 현지에서는 “정부가 허가를 너무 쉽게 내줬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바이니라마라마 정권 시기 GR 계열사는 총리·대통령 관저 리모델링 같은 국가 핵심 시설 공사를 도맡았고, 정부 고위직들까지 개점식에 참석해 이 그룹을 치켜세웠다.

교주 신옥주는 한국에서 징역 7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지만, 피지의 GR은 오히려 더 체계화됐다. 중심에는 신옥주의 아들 다니엘 김(김정용)이 있다. 그는 피지 법인 9곳의 단일 이사로 등재된 사실상 대표로,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면서도 피지 현지에서 보석 상태로 버티며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피지 새 정부가 이들을 사이비로 규정하며 추방을 시도했지만, GR은 막강한 현금력으로 로펌을 고용해 법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뭔가 새로운 시도인 것 같지만 통일교 모델이다. 그냥 작은 나라에 가서 크게 했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매우 한국적이다. 너무 사무치게 한국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