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국영방송 YLE는 1989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0년 동안 라틴어 뉴스 프로그램, 눈티이 라티니…
핀란드 국영방송 YLE는 1989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0년 동안 라틴어 뉴스 프로그램, 눈티이 라티니(Nuntii Latini)를 운영했다. 유럽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실험이었는데, 매주 5분짜리 뉴스가 오로지 라틴어로만 방송됐다. 정치, 과학, 문화, 스포츠 소식까지 다루면서 “죽은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라는 걸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이게 핀란드에서 가능했던 건 라틴어의 위상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라틴어는 중세 이후 점차 자취를 감추고 고전학 전공자들만 다루는 학문 언어로 남았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달랐다. 스웨덴 지배기와 러시아 제국 치하를 거치면서 학문과 법률, 지식인 교육의 공용어가 라틴어였고, 20세기 중반까지도 중등교육에서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민족어인 핀란드어가 늦게 학문 언어로 자리 잡은 만큼, 라틴어는 “유럽의 보편 언어”이자 중립적 문화유산으로 기능했다. 눈티이 라티니가 흥미로운 건 발음과 어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바티칸 교황청이 쓰는 이탈리아식 교회 라틴어 발음 대신, 핀란드 고전학 전통에 맞춰 복원된 고전 라틴어 발음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Caesar는 체사르가 아니라 카이사르로 읽혔다. 어휘의 경우 바티칸 라틴어 재단이 편찬한 [Lexicon Recentis Latinitatis] 같은 현대 라틴어 사전을 적극 활용했지만, 국제 뉴스나 과학 신조어처럼 기존에 없는 표현은 방송진이 직접 고전 라틴어 어근을 활용해 새로 만들었다. 컴퓨터, 인터넷, 유엔, 환경 문제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 다듬어졌다. 이 때문에 눈티이 라티니는 바티칸의 권위 있는 현대 라틴어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핀란드 학계의 독창성이 결합된 독특한 라틴어 실험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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