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학에서 늘 특이한 쌍으로 꼽힌다. 문법 구조나 문장 구성, 조사와 어미 체계, 높임법과…
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학에서 늘 특이한 쌍으로 꼽힌다. 문법 구조나 문장 구성, 조사와 어미 체계, 높임법과 부정문·의문문 형성 방식까지 거의 모든 문법적 골격이 서로 거울처럼 닮아 있는데, 정작 기초 어휘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숫자, 신체, 자연물 같은 가장 오래된 어휘에서 공통점이 극히 적고, 한자어를 제외한 고유어만 놓고 보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이 거의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구조적 유사성은 단순히 "어순이 같다"는 수준을 훌쩍 넘는다. 복잡한 문장을 예로 들어 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진다. "나는 어제 친구에게 부탁받은 책을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서 찾아서 돌려주었다" 이 문장을 일본어로 바꾸면: "私は 昨日 友達に 頼まれた 本を 今日の朝 図書館で 探して 返した" 조사, 수식어의 위치, 동사의 끝자리에 놓이는 활용 형태까지 거의 일대일로 대응하며, 단어만 치환하면 번역이 성립한다. 문장 전체를 구조적으로 뜯어보면 단 하나의 구성 요소도 자리를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뼈대가 완전히 일치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보통 서로 다른 언어는 문장이 길어질수록 구조 차이가 드러나는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오히려 길고 복잡한 문장일수록 서로의 골격이 얼마나 완벽하게 겹치는지가 드러난다. 이 때문에 두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어휘만 익히면 나머지 문법 체계는 거의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다는 점을 곧 깨닫게 된다. 그래서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한일 번역기는 다른 언어 쌍에 비해 구현이 훨씬 쉬웠다. 이 현상은 단순히 언어학적으로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두 언어를 쓰는 집단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기묘하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고대에는 수백 년 동안 정치적·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었고 대규모 인구 이동과 귀화, 지배층 교류까지 반복되었다. 여기서 한자어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두 언어 모두 어휘의 상당 부분이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천 년 이상 이어진 중국 문명권 내에서의 문화 교류를 반영한다. 한자어를 통해 두 언어 사용자는 학술, 행정, 문화 영역에서 상당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일상적 고유어 층위에서는 거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더 수수께끼를 깊게 만든다. 비교 대상을 찾아보면 이 특이성이 더 부각된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문법 구조가 상당히 다르지만 노르만 정복 이후 어휘의 약 30%를 공유한다. 터키어와 아랍어·페르시아어도 구조는 완전히 다르지만 오랜 접촉으로 두 고유어 자체가 엄청난 양의 차용어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정반대다. 국가 단위의 인적 교류가 이 정도로 오랜 시간 이어진 두 집단에서 이렇게까지 구조는 일치하면서 고유어는 거의 따로 노는 언어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공통 조상어' 가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두 언어가 먼 옛날 하나의 언어에서 갈라진 뒤 수천 년에 걸쳐 어휘가 크게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일부 학자들(알렉산더 보빈 등)은 체계적 음운 변화 법칙을 적용하면 소수지만 기초 어휘에서도 대응 관계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재 학계의 주류 견해는 다르다. 장기간 이어진 접촉과 교류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구조가 점점 비슷해진 것일 뿐, 혈통적으로 같은 뿌리를 가진 언어라고 볼 결정적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를 언어학 용어로 'Sprachbund(언어 연합)' 현상이라고 한다. 발칸 반도의 여러 언어들이나 인도 아대륙의 언어들처럼, 서로 다른 계통의 언어들이 오랜 접촉으로 구조적 특징을 공유하게 된 사례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이 있다. 두 언어 간 관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두 나라 간의 정치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데, 지난 수십 년간 양국 학계가 과연 한일 과거사, 국가주의 등에서 얼마나 자유로웠을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일본 학계 일부는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어 고립어설"을 국가적 독자성과 연결시키려 했고, 한국 학계도 한때 "알타이어족설"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선호한 시기가 있었다. 최근에는 양국 모두 보다 객관적 연구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물론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증거를 숨기거나 부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증거 해석의 기준 자체가 무의식적으로 영향받을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다. 어느 정도의 어휘 유사성을 "우연의 일치"로 볼지, "공통 기원의 증거"로 볼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연구자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같은 데이터를 놓고도 한쪽은 "이 정도면 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다른 쪽은 "이 정도면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근데 2020년대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가령 한국어의 '진짜'와 일본 젊은이들이 즐겨쓰는 '소레나(それな 그래)를 합쳐 "진짜 소레나(진짜 그래)"라던가, 역시 일본어 야바이(やばい 대박)와 한국어 '인데'를 합친 "야바이인데(やばい+인데, 대박인데)" 등이다. 전자는 일본 개그맨 '스쿨 존'이 사용해 유명해졌고 후자는 케이팝 걸그룹 아이즈원(IZ*ONE)이 말하면서 10대들의 유행어가 됐다. 이 외에도 "마지 미안해(まじ+미안해=정말 미안해), "알았어데스"(알았어+です= 알았어요), "진짜? 야바이(진짜? 대박!) 등의 말들이 있다. "맵다까라 키오쯔케떼(매우니까 조심해!) 등 기존 일본어 문장에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한류 한참 전부터 재일교포 커뮤니티에서는 ‘국물에 밥 등을 넣는다’는 뜻의 ‘말다’의 활용형인 ‘말아(マラ)’를 사용한 "ご飯マラして(밥+マラ+~해서) 食べなさい (드세요)"라는 구문이 쓰이고, 주한 일본인 커뮤니티에서는 "後で行くから(나중에 갈테니)チャリ(한국어 '자리' 음차)、チャバ('잡아' 음차)っといて(라고 전해줘)", "何か(뭐라도)ペダル('배달' 음차)シキョ('시켜' 음차)る?" 같은 표현도 사용됐다. 1400년 뒤 학자들 골치 아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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