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동맹은 현대 무역의 틀을 미리 그린 조직이었다. 도시 간의 협약, 공동 리스크 분산, 공급망 통합, 분쟁…
한자동맹은 현대 무역의 틀을 미리 그린 조직이었다. 도시 간의 협약, 공동 리스크 분산, 공급망 통합, 분쟁 조정, 가격 안정 같은 개념이 중세 유럽 북부에서 먼저 정착됐다. 뤼벡을 중심으로 발트해와 북해의 항구 도시들은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단계를 넘어서, 무역 자체를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연합했다. 오늘날의 무역협정이나 관세동맹, 심지어 다자간 조약의 전신이 이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다. 거래는 도시들 간 신뢰를 기반으로 했고, 이를 위해 표준화된 계약 문서와 공동 중재 제도가 자리잡았다. 리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브레멘이나 함부르크의 상인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한자 도시들은 규칙을 정하고 어길 경우 전체 연합 차원에서 제재를 가했다. 한 도시가 남의 배를 공격하거나 관세를 올리거나 하면 바로 함께 응징했다. 이건 지금의 WTO나 EU보다도 더 간단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시스템이었다. 권위는 중앙 권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참가 도시들이 스스로 규칙을 지키고 지키게 만들면서 생겼다.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든 중심에는 이름부터 특이한 ‘한자(Hanse)’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 말은 고지 독일어에서 ‘무역 동맹’ 또는 ‘무장 상인단’을 뜻하는 단어로, 본래는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 도시가 물리적 보호막 없이도 무역을 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방어하고 교섭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자’는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도시 간 상호 보호와 공통 이익을 추구하는 실천적 개념이었다. 영어로는 ‘Hanseatic League’라 부르고, 독일어로는 ‘die Hanse’ 또는 ‘die Hanseatische Liga’라고 한다. 발음은 독일어로 [ˈhaːnzə], 영어식으로는 [ˌhænziˈætɪk]이며, 한국어의 ‘한자(漢字)’와는 아무 관계 없다. 중세 북부 유럽이 왜 사서삼경을 중심으로 뭉치겠는가. 한자동맹의 가장 큰 의의는 국가가 아닌 조직들이 모여서 공동체 무역과 위험 분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이 위험 분산 수단이 이후 인도, 식민지 무역 등으로 이어지며 무역이 보험제도, 주식회사 등 위험 분산 방향으로 확 발전하게 된다. 위험 분산과 국제 규칙 표준화는 사실 모든 무역과 경제 개념의 발전 방향이었다. 독일계 3세대 이민자 바보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지네 조상이 해낸 일만 좀 봐도 이러지 않을텐데. 하긴 트럼프 할아버지가 독일 내륙 남서부 바이에른 출신이라 한자동맹이랑은 거리가 멀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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