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루마니아의 라자르 에델리아누가 암페타민이라는 성분을 합성했으나 용도를 찾지 못했다. 1927년부터…
1887년 루마니아의 라자르 에델리아누가 암페타민이라는 성분을 합성했으나 용도를 찾지 못했다. 1927년부터 임상 연구 후 천식, 코막힘 치료제로 사용되고, 곧 기분 고양제, 집중력 향상제로 팔리기 시작했다. 1893년 일본의 나가이 나가요시가 마황으로 알칼로이드를 연구하다가 메스암페타민이라는 성분을 합성했다. 당시에는 특별한 활용처를 찾지 못했다. 1919년 오가타 아키라가 이걸 안정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약리 효과 연구가 시작됐다. 비만 치료제, 기관지 확장제, 특히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두 약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 군대에게 필수품이 됐다. 독일은 퍼비틴(Pervitin, 메스암페타민의 독일 상품명)을 정식 전투식량처럼 나눠줬다. 1939년부터 40년까지 3,500만 정을 배급했다. 병사들은 수일간 잠을 자지 않고 진격했고, ‘블리츠크리크’의 속도 뒤에는 각성제가 있었다. 일본은 필로폰(Philopon, 역시 메스암페타민의 일본 상품명)을 조종사와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이는 전후에 민간으로 흘러들어가 거대한 중독 문제를 낳았다. 미국과 영국은 벤제드린(Benzedrine, 암페타민의 미국 상품명)을 일반병에게 필수품으로 줬고 총 2억 정 이상 배급했다. 야전에서는 모르핀 주사기(시렛트)가 기본 장비였다. 소련은 상대적으로 체계적 약물 지급은 덜했으나 보드카가 군수품처럼 쓰였고, 모르핀 역시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암페타민은 복용하면 뇌와 신경계의 신호 전달 속도를 인위적으로 강화한다.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고 재흡수가 억제돼서 더 오래, 더 강하게 작동하게 만든다. 기분 고양 효과가 있다. 빠른 반응속도, 높은 집중도, 각성 상태가 유지된다. 체온이 올라가고, 혈압과 맥박이 증가하며, 식욕이 떨어지고 잠이 줄어들지만, 최종적으로는 피로가 증가한다. 장기복용하면 환각, 조현병 등이 생길 수 있다. 메스암페타민의 작용 기전은 암페타민과 동일하나 혈뇌장벽을 훨씬 잘 통과해서 효과가 더 강하고 오래 간다. 따라서 도파민 분비 고갈에 따른 무기력, 우울, 정신병적 망상 등이 더 심하다. 도파민, 세로토닌 신경세포 손상이 빠르고 뇌졸증, 심장질환이 초래된다. 중독성이 암페타민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 법적으로는 당시 이들 약물이 강력 규제 대상이 아니었다. 메스암페타민이나 암페타민은 합법 의약품이었고, 심지어 피로 회복제, 비만 치료제, 집중력 보조제라는 이름으로 민간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었다. 전시에는 정부가 대량 생산·배급했고, 그 결과 전후 일본에서는 수십만 명의 메스암페타민 중독자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독일·영국에서도 퇴역병의 중독 사례가 보고되었고, 미국에서는 ‘군에서 준 약’이 전후 암페타민 남용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메스암페타민은 주로 "meth", "크리스탈", "아이스", "히로뽕", "샤부", "스피드", "어퍼스" 등으로 불린다. 암페타민 역시 "아이스", "스피드", "어퍼스" 등의 별명을 공유한다. 이후 전쟁사에서 약물은 계속 군대의 그림자였다. 베트남전에서는 각성제뿐 아니라 진통제, 대마, 심지어 헤로인까지 미군 병사들 사이에 퍼졌다. 공식적으로는 암페타민과 진정제가 지급되었고, 비공식적으로는 전선에서 광범위한 마약 남용이 보고됐다. 1990년대 걸프전에서도 불법 마약보다는 역시 공식적으로 지급된 처방약이 문제였다. 한편 부상자 치료와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모르핀·옥시코돈 같은 강력 진통제가 널리 쓰였고, 전후 미국 사회에 이어질 오피오이드 의존 문제의 시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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