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선 후기:
1. 카말라 해리스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순수 흑인-백인이 아닌 혈통을 가진 부통령이 됐습니다. 해리스의 어머니는 인도에서 이민 온 생물학자고, 아버지는 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경제학 교수입니다. 외할아버지가 인도 독립운동에 적극적 활동을 했었고, 인도 정부 수립 후 부패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는 남아시아로 구분되기 때문에 첫 아시아계 부통령이기도 합니다.
카말라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의미하고 락쉬미 여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미들네임인 데비 역시 산스크리트어로 여신이라는 의미입니다. 해리스의 타밀어 실력은 아마도 미국 이민자 2세들이 흔히 그렇듯 유아기 수준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이민자 2세 대통령/부통령은 아닙니다. 토마스 제퍼슨, 앤드류 잭슨, 우드로 윌슨, 후버, 오바마, 트럼프(어머니가 스코틀랜드 사람) 역시 엄밀히 따지면 이민자 2세 들입니다.
오바마를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여겼던 케냐처럼 인도 또한 축제 분위기일 걸로 예상합니다.
2. 바이든까지 미국에는 45명의 대통령이 있었는데 바이든은 46대 대통령이 되는 이유는 22대 대통령이던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그 다음에 다시 도전해서 24대 대통령이 됐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트럼프는 2024년에 다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 옥중출마를… ….
트럼프는 단임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재선실패 직전까지도 레임덕이 없던 독특한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하루 120,0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도 미국 대선 역사상 바이든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3. 결국 바이든이 선거인단 306표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232표로 그칠 겁니다. 꽤 큰 표차로 승리한 것 같지만 결전지의 개표 드라마에서 다 느꼈듯이 정말 아슬아슬한 표차로 승부가 결정됐습니다. 특히 위스콘신이나 펜실베이니아는 4년전 공화당 지지 지역으로 변한 뒤 이번에 다시 전통적 민주당 강세로 돌아선 게 아니라 4년 전과 아주 비슷하지만 살짝 민주당 우위가 됐을 뿐입니다. 2024년 대선도 쉽지 않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4. 1월의 조지아 상원 의석 결선투표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화당은 사실상 50석을 확보했습니다. 다수석이 되려면 51석이 필요합니다. 조지아 주 결선투표로 조지아 상원 의석 2석의 향방이 문제인데, 여기서 민주당이 이기면 48-50이 되고, 주로 민주당에 힘을 보태주는 무소속 버니 샌더스와 앵거스 킹 의원, 상원의장을 겸직하는 부통령이 행사하는 1표를 포함해서 51표로 다수를 점하게 됩니다.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하지 못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장관 임명도 공화당 허락을 받아야하는 반쪽 대통령이 됩니다. 1월에 있을 결선 투표에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자금이 조지아로 몰릴 것 같습니다.
5. 트럼프 정권 4년을 겪은 직후 바이든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의 진보, 그리고 상식의 귀환을 의미합니다. 단지 바이든이 개혁적 인물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오바마 정권 8년 끝에 바이든 부통령이 이어서 대통령이 됐다면 미국은 한발짝 뒷걸음을 걸었다고 평가받았을 겁니다. 사실 트럼프 진영이 왜 해리스 vs 바이든 토론 장면들을 더 활용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습니다.
미국은 1862년에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면서 공식적으로 흑인들을 인간으로 인정했고, 1868년 대선에서 남부 흑인들의 압도적 지지로 남북전쟁의 북부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습니다. 그러나 흑인을 사회 최저층 계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은 많았고, 사립은 물론이고 공립학교도 흑인학교와 백인학교를 나누고, 공공화장실도 백인용, 비백인용으로 나누는 만행이 1960년대 말까지도 지속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백인학교라고 하기보다 비흑인 학교였던게, 지금도 오래된 학교들 졸업생 앨범을 40-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시아계/라틴계 학생들이 백인학생들과 함께 다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흑인만 거부한 겁니다.
이걸 깨뜨린게 1954년 대법원 판결인 브라운 v.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결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더 이상 인종으로 학교를 나눌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이미 경제력 차이로 인해 사는 지역 자체가 심하게 분리된 흑인들은 계속 흑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다니는 상태가 1971년까지 지속됐고, 결국 연방정부에서 스쿨버스를 사용해서 사는 지역이 다르더라도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실시 했습니다.
1972년에 초선 상원의원이 된 바이든은 바로 그 정책이 자신의 지역구를 포함한 북동부(뉴욕시, 등)에서 실시되는 것에 반대표를 던졌고, 작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에서 스쿨버스 정책 덕에 정상적으로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당신의 그 반대표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고 집요하게 지적했고 바이든은 사실상 거짓 해명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트럼프가 더 부각시켰다면 과연 바이든이 이번 주에 압도적 흑인표를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오늘날도 더 심하게 흑인차별 발언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자기모순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S6-UC8yr0Aw
6. A. 대통령직이 제공하는 면책특권을 잃게 될 트럼프는 일단 탈세 혐의로 걸리는 건 확실합니다. 대통령 당선 전까지는 그냥 사업가이자 연예인에 불과해서 꼭 트럼프의 세금 내역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 다릅니다. B. 융자와 보험 서류에 지속적으로 거짓 내용을 적은 게 확실하기 때문에 사기죄도 있습니다. C. 선거자금을 정말 너무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의 트럼프와의 관계 폭로를 입막음 하게 위해 13만불을 줬는데 그 돈도 선거자금이었습니다. 더 자세히 따지면 복잡하지만 한 두번이 아니고 트럼프 가족 전체가 쌈짓돈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D.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트럼프의 정책과 발언들은 미필적 고의 살인죄로 걸릴 소지가 충분합니다. 미국이 전직 대통령의 정책적 결정을 처벌할 준비가 돼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E. 멀러 수사팀의 트럼프-러시아 관계에 대한 수사를 다양한 방법으로 방해한 건 확실히 공무집행방해로 걸립니다.
큰 것만 정리했는데 이 정도가 나왔습니다. 이제 권력의 상징, 힘의 상징으로서 트럼프를 신봉하며 작년 탄핵 절차를 파탄내어 트럼프를 방어해주던 공화당 진영이 과연 권력을 잃은 트럼프를 계속 지원할지도 이슈고, 아슬하게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초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한 시기를 전임 대통령 처벌에 소비할 것인가, 공화당이 상원 다수를 지킨다면 어떤 식으로 트럼프 처벌에 영향을 줄 것인가의 이슈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