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이 “어차피 민초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인데 공수처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모르겠네”라는 분들의…
검찰개혁이 "어차피 민초들의 삶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인데 공수처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모르겠네"라는 분들의 주장은, 예를 들면 윤석열 총장의 장모 범죄 수사/처벌을 막은 혐의를 제대로 수사하도록 강제해봤자 고위직 공무원 한 명이 처벌 받고 안 받고의 차이지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냐는 뜻일 겁니다.
검찰개혁 해봤자 BBK 면죄부 사건, 노무현 대통령 조작 수사, 한명숙 뇌물 조작 사건, 김학의 성폭행 접대 사건, 국정농단, 검사 스폰서 사건, 검찰 돈동투 만찬 사건, 조국 수사 무리수, 채널 A 검언유착 사건, 등의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뿐 무슨 득이 더 있냐는 주장이죠.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발생해서는 안될 저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의 재발을 방지하는 게 왜 의미없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검찰 적폐의 폐해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검찰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정말 막대하고 막강합니다.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은 한국에 사는 시민 중 단 한명도 빼놓지 않고 100%에게 적용됩니다. 그 어떤 정부기관이나 사조직도 따라갈 수 없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입니다. 그리고 정의의 여신이 죄와 벌을 저울에 올려 측정할 때 검찰이 손가락을 얹어 도와주는 쪽은 항상 권력을 가진 쪽입니다.
예를 들어 국정원이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고자 할 때, 유력 정치인이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시민들을 잠재우고자 할 때, 검사의 장모가 탈취하고픈 재산을 가진 사람을 감옥 보내고 싶을 때, 재벌이 노동자의 권익을 누르고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자 할 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권력은 항상 검찰이 제공합니다. 민사사건도 검찰이 관여하기 때문에 개인 대 개인의 분쟁에서도 검찰 권력이 작동하고 검찰에 연줄이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은 검사 사위를 둔(혹은 전관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있는) 일등시민과 그렇지 않은 이등시민으로 나뉠 수 밖에 없습니다.
검찰만 개혁하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검찰개혁 없이 해결될 문제도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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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를 만들어봤자 또 다른 권력기관이 생길 뿐 그게 어떻게 검찰개혁이냐는 주장도 굉장히 단순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입법권과 예산편성권, 국정감사권을 가진 국회 권력이 300명에게 분산되지 않고 1명에게 집중된다면 그 1인의 국회의원은 혼자 개헌도 가능하고 대통령, 대법원장 가릴 것 없이 마음대로 탄핵이 가능합니다. 입법부가 이미 가지고 있는 똑같은 양의 권력을 소수 인원에게 집중하기만 해도 행정부와 사법부를 압도하는 권력기관이 되는 겁니다.(같은 이유로 국회의원 특권이 너무 큰게 문제라면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게 낫습니다) 마찬가지로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을 나눠서 여러 기관으로 분산하기만 해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제 흔한 얘기가 됐지만 한명숙, 조국의 경우처럼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검찰의 진정한 정치권력은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는데서 나옵니다. 검사가 퇴직 후 축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전관예우의 핵심은 처벌 받아야 할 대상을 봐주는 데서 나옵니다. 역대 정부를 상대로 거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기소해야 할 비리를 눈감아줄 수 있는 권한에서 나옵니다.
이제 검찰이 눈감아주려 해도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게 되면 그 만큼 기소권의 남용이 힘들어지는 겁니다. 검찰과만 거래하면 되는 지금과 달리 검찰과 공수처를 모두 매수해야하니까요. 이 기소권을 경찰, 상설특검, 피해자 본인들이 나눠갖거나, 혹은 모든 사건을 무조건 기소하게 하고 법원에서 판단하기 시작하면 아예 기소권 남용이 불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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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고 한편으로는 다행입니다. 너무 큰 발언권을 가진 스피커들의 경우 이런 세부사항까지는 모르는 시민들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서 걱정이고, 특히 그 논리의 비약과 빈약을 보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차피 발언권이 별로 없는 페북 인사분들의 경우는 나름 정치평론가, 언론인, 정치학박사 등등이지만 별 영향력 없는 분들이기에 다행이기도 합니다.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