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분쟁이 갑자기 심화되는 이유
미국에게 있어서 1950년대 이후에 급팽창했던 중산층은 튼튼한 허리근육과도 같은 것이었다. 정말 그 시절 미국은 뭘 해도 다 성공하는 나라였다.
거기에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는 미국에게 있어서 시간이 갈 수록 치트키 같은 역할을 했다. 미국이 아무리 돈을 흥청망청 써도, 그 빈 자리에는 전세계에서 달러가 쏟아져들어와 곳간을 채워줬다. 국가부채가 곧 국력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오면 모든 국가가 미국 국채와 일본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보고 돈을 거기에 묻어두려한다. 불황이 오면 달러가 미국을 향하고, 미국은 또 그 달러를 풀어서 양적완화로 버티는 사이클이 계속 됐다. 일본 아베노믹스도 아마 비슷한 효과를 기대했겠지만 엔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만 쓸 수 있는 신묘한 정책이었다.
1980년 이후 미국이 구축하고 전세계에 퍼뜨린 신자유주의는 중산층을 증발시켰고, 중국을 분업체계의 최종보스로 만들어줬다.
내가 보는 미-중 간에 결정적 파국 계기는 중국의 경제규모/달러보유고/군사전력이 일정 수준에 가까워지면서 시작됐다. 그 성공 가능성은 차치하고, 일단 중국이 무역 결제금액을 위안화, 혹은 유로로 바꿔 받기 시작하면, 아니 일부만이라도 비-달러 화폐로 결제수단을 전환하면 그 순간부터 달러의 세계기축통화로서의 역할에 균열이 간다. 달러와 미국을 믿음으로 받들어야 운영되는 체제인데, 강력한 이단 종파가 등장하는 거다. 미국의 경제 지위를 단칼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무서운 존재가 된 거다. 물론 중국에게도 엄청난 충격이 갈 수 있는 일이라 중국도 말로만 위협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오바마 시절 미국 정부가 2007년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오느라 바쁜 와중에 급속도로 진행됐다. 미국은 그냥 완전히 손 놓고 중국의 부상을 보고만 있었다. 2050년, 빠르게는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쉽게 추월할 수 있다는 예측은 2000년대 초부터 나왔지만, 단기수익 위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가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인 것처럼, 미국은 아이폰을 만들어주는 중국과 전면적 대립해야하는 상황을 피했다.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2020년에 이미 PPP로 중국 GNP가 미국을 추월했다.
근데 늦게나마 미국이 중국의 질주를 막을 수 있는 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하필 트럼프였기 때문에 과연 국가대계의 한수였는지, 그냥 트럼프가 새벽 2시에 트위트 날려도 사람들 반응이 시원찮아서 심기불편해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다.
미국의 화웨이, 관세 압박, 본격적 중국 포위 작전에 중국에게는 크게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이 요구하는 국제질서를 수용하고 미국-중국-일본-독일 등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에 맞춰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1985년 플라자 합의의 재판. 영토분쟁/홍콩/대만 포기 & 위안화 절상). 또 하나는 거기에 대립해 중국식 자본주의 헤게모니(일대일로)를 만드는 것. 마지막 하나는 이것도 저것도 안 될 때는 그냥 지금까지 이룬 경제성장의 과실을 양손 양호주머니에 꽉 채우고 서방세계 자본주의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
중국은 지금 호주머니를 빵빵하게 채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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