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스타일이라는 것도 계속 변화하는 거겠지만 옛날 영화, 혹은 연극 스타일 연기와 최근 몇십 년의 좀 더…
연기 스타일이라는 것도 계속 변화하는 거겠지만 옛날 영화, 혹은 연극 스타일 연기와 최근 몇십 년의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 차이가 워낙 커서 옛날 영화는 어색해서 못 보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무대 관객들 전체를 상대로 연기해야 하는 경우 연기 스타일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옛날 영화들은 감정 표현보다 이야기 진행이 더 중요해서 각 장면에서 슬픈 사람은 확실히 슬프다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기쁜 사람은 확실히 기뻐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겨야 한다. 활자로 읽을 때 저자가 말해주지 않는 건 독자가 알 수 없으니 글 속 인물들의 감정 상태 묘사가 좀 더 구체적일 수 밖에 없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의 연기 스타일은 그냥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그 감정을 함께 얼마나 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느냐에 사활을 걸고, 다양한 배역을 하면서도 감정이입을 잘 시키는 배우들이 명배우로 인정받는다. 옛날 영화계를 생각하면 배우가 뜨기 위해서는 어떤 캐릭터를 잡아 성공시켜야 하고, 그게 성공하면 그 캐릭터를 서로 연관 없는 영화들 속에서도 유지했다. 지금의 드웨인 존슨이나 마동석처럼. 험프리 보가트는 항상 험프리 보가트고 지미 스투어트는 어느 영화에서건 항상 지미 스투어트였다. 자신의 캐릭터를 흥미로운 새 영화에 어떻게 잘 버무리느냐가 연기력의 판단 기준이었다. 영화 시작부터 이미 관객들이 익숙한 캐릭터를 알아봐주면 제작진 모두의 고민이 절반으로 줄어들 던 무성영화 시절에 영화 연기 공식이 정립됐기 때문이다. 말을 못하니 표정과 몸짓으로 상황까지 표현해야 했던 시절이다. 자연스런 연기로 대세가 확 기울었던 건 말론 브랜도 때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워터프론트]를 보면 배우들 대부분은 옛날 방식 연기를 하고 있고 말론 브랜도 혼자 2024년에서 타임슬립해 과거로 돌아간 배우처럼 자연스런 연기를 한다. 이 신인 배우의 연기 스타일이 대박나면서 자연스런 연기, 메소드 연기 등이 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물론 말론 브랜도가 혼자 창시한 스타일이 아니고 스타니슬랍스키, 그룹 시에터 등의 토양에서 자라 가장 먼저 찬란하게 주목 받은 꽃이 브랜도였다. 저 두 영화의 감독 엘리아 카잔 자신이 메소드 연기 연구 그룹인 그룹 시에터 출신이다. 관객의 취향이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온 상태라 다시 옛날 스타일 연기가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이지만… 미래에 연기가 진화할 수 있는 방향 하나는 떠오른다. 이건 연기의 미래라기보다 대중이 영상물을 즐기는 방식의 변화지만… 과거에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방식에서 지금의 이야기 속 인물에 더 감정이입하며 즐기는 쪽으로 발전했고 이제 미래엔 AI 기술 덕에 그 다음 단계인 이야기 속 인물이 되어 직접 이야기 방향을 결정하기가 가능해진다. 88선택문고나 컴퓨터 게임 같은 건데, 실제 실사 배우들의 현실적 연기를 보며 제대로 감정이입해서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 AI가 순간 순간 다음 장면을 생성해주면 이게 가능하다. 혹시라도 이렇게 생성형 영화나 드라마가 대세가 돼서 100만명의 관객이 있으면 100만개의 서로 다른 결말이 나오는 세상이 되면, 일반 연기하는 배우들의 생태계가 확 줄어든다. 지금이야 이미 유명한 스타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라이센싱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치지만, 그럼 다음 세대 스타 배우들은 어디서 나와야하나… 지금 내 상상력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그럼 그때가면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유명 배우들이 계속 끊임없이 재활용되며 새로운 스타는 더 이상 거의 안 나오고, 나오더라도 신인 배우들은 AI에게 자신의 모습만 빌려주고, 오프라인에서 홍보 활동이 주된 일이 된다. 혹은 반대로 모든 인물이 새로 생성된 독특한 모습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영화배우들 대부분이 서로 다른 영화에서 사실상 같은 캐릭터를 유지하고 미는 게 대세였던 게 아주 옛날 일이듯, 미래에는 지금 영화들에서 같은 배우의 같은 얼굴이 다양한 영화에서 등장하는 게 아주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소설은 이런 제약이 없다. 모든 인물이 다 독특하다. 영상으로 연기로 표현하려면 인간이라는 도구를 써야하고 기능좋은 도구의 수가 제한적이다 보니 계속 재활용되고 있어서 생기는, 어쩌면 20, 21세기의 한시적 기술적 제약일 수도 있다. 이제 모든 영화의 모든 인물이 독특한 얼굴로 생성될 수도 있으니. 그게 되려면 스타파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이야기, 연기, 표현, 이 모든 걸 가능케 하는 AI 기술력으로 승부가 갈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타를 보기 위해 영화나 드라마를 소비하는 팬덤 구조가 있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갈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가능성은 생성형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티모시 샬라메나 고윤정이 아니라 바로 나이기 때문에 꼭 스타파워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소설은 스타파워 없이도 우리의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이 모든 걸 이미 구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