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독신이었고, 평생 고향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 바깥으로 벗어난 일도 거의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갔고, 동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시계를 맞췄다. 글을 쓰는 시간, 식사 시간, 사람을 만나는 시간 모두 분 단위로 정해져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도 삶처럼 구조적이었다. 감정보다 범주, 개념, 규칙에 몰두했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관계를 조율하기보다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보편 윤리를 만들어냈다. 윤리조차 정서적 직관이 아니라 논리와 의무에서 출발했다.
공감의 결핍, 반복과 규칙에 대한 강한 집착, 사회적 거리 두기, 감각과 감정에 대한 무관심.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자폐 스펙트럼에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요소를 여럿 갖고 있다. 그에겐 세상은 정리되고 예측 가능해야 했고, 그는 그 안에서 완벽한 질서를 만들고자 했다.
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칸트의 마지막 말은 “Es ist gut.”, 번역하면 “이 정도면 됐어.” 더 설명도, 감정도 없었다. 삶의 마침표마저 정확하고 절제되어 있었다.
쿠오모 시장은 민주당 뿐 아니라 무소속 후보로도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려서 중도파를 공략할 계획이었는데 민주당 경선은 조흐란에게 졌지만 무소속 후보 이름은 계속 올려서 싸워볼 생각이라 함.
이거 어떻게든 조흐란은 눌러놓겠다는 뜻이고, 여차하면 조흐란이 이기게 두느니 차라리 공화당 후보가 이길 수 있게 표를 분산시켜주겠다는 뜻.
하여튼 이 ㄱㅅㄲ들. 내가 보기엔 100% 힐러리 짓.
트럼프 취임과 함께 일론 머스크가 화려하게 데뷰시켰던 미국 정부효율부(DOGE).
거기서 일하던 엔지니어 하나가 인터뷰에서 이런 저런 내부 사정을 얘기하자 몇시간 만에 그 엔지니어의 시스템 사용권한 박탈. 그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들어보자.
–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공서비스를 개선하는 게 자신의 인생 목표라서 자원
– 실제로 일해보니 약간의 낭비는 있고, 사기는 거의 없었고, 권한남용 케이스는 사실상 없었다
– 자신도 정부라는 건 비효율적인 기관인줄 알고 들어갔는데 굉장히 놀랐고, 고민해본 결과 자신같은 IT 쪽 사람들은 구글같은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자되는 회사에서 수억 연봉 인력이 매일 장난치며 놀고 있는 모습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부는 더 심할 거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이렇게 감시와 견제 장치가 많이 들어가있는 줄 몰랐다. 사기업에는 이런 거 없다.
– 처음부터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의 투명성에 대해 자신들에게 계속 강조했기 때문에 자신도 머스크를 믿고 투명하게 인터뷰에 임한다고 설명
그 결과 최대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정부효율부는 인터뷰 몇시간 만에 해고도 아니고 징계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시스템 접근 권한만 뺏었다 함. 가장 불투명한 방식으로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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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일론 머스크가 이번달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빠진 것도 더 쉽게 설명 됨. 실제로 들여다볼 기회를 얻기도 전에 정부는 비효율과 낭비 덩어리라고 먼저 단정해놓고 미리 큰소리 떵떵 쳤는데 효율화 할 낭비와 사기를 찾지 못하자 슬그머니 도망간거거나, 약속했던 것과 달리 결과를 내놓지 못하니 트럼프 행정부에서 밀려났거나. 찾았다고 발표했던 낭비라는 것들도 아마 사기.
우간다에는 인도계 인구가 꽤 많았다. 심지어 한때는 우간다 전체 경제의 70% 이상을 인도계가 장악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제국은 인도인을 관리직과 상업 계층으로 아프리카 곳곳에 이주시켰고, 그 흔적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건 우간다만의 일이 아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인도계 인구 37%), 가이아나(40%), 수리남(28%), 피지(38%), 모리셔스(66%), 케냐(3%), 남아프리카공화국(2.5%) 등 영국 식민지였던 수많은 나라에 지금도 인도계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영국 인구의 2.3%도 인도계다. 어떤 나라에선 인도계가 다수 민족이 되기도 했고, 대통령이 인도계인 나라들도 있다.
우간다는 특히 1970년대 초 독재자 이디 아민이 집권하자 인도계를 대거 추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경제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 결과 우간다 경제는 단숨에 무너졌고, 인도계는 영국과 캐나다로 대거 이주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자 우간다는 다시 인도계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경제가 안 되니까. 지금은 전체 인구의 1% 정도 밖에 안된다.
이건 식민지의 기억이 지금도 세계 질서에 얼마나 실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어떤 민족은 제국의 도구로 파견되었고, 또 어떤 민족은 해방 이후에도 '외부인'으로 낙인찍혔다. 그 틈에서 계급과 민족, 상인과 원주민, 피억압자와 피착취자의 경계가 뒤섞였다.
예를 들어 간디 역시 인도 본토에서 투쟁을 시작한 게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인도계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과 모욕 속에서 정치 의식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 경험이 훗날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끄는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재밌는 건, 이런 곳에서 자란 인도계들 중 일부는 지금 서구 진보정치의 새로운 얼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흐란 맘다니, 그의 아버지는 인도에서 태어나 우간다에서 자랐다가 추방당한 이민자였다. 그 아들이 지금 뉴욕에서 민주당 주류를 꺾고 시장 후보가 됐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인도계가 국가 정상에 오른 사례도 늘고 있다. 리시 수낙은 영국 총리로,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 부통령으로, 찬 산토키는 수리남 대통령으로, 나빈 람굴람은 모리셔스 총리로 선출됐다. 모두 식민의 흐름 속에서 디아스포라로 뿌리내린 인도계들이다. 한때 주변부였던 이들이 이제는 중심에서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논의하는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뉴욕 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좌파 후보 조흐란 맘다니가 쿠오모를 꺾고 승리했다. 이건 그냥 한 지역의 선거가 아니다. 민주당 안에서 무겁게 눌러왔던 힘, 오랫동안 클린턴-오바마-바이든으로 이어지던 당 주류의 '쥐고 흔들기'가 처음으로 뚫린 순간일 수 있다.
맘다니는 버니 샌더스가 지지한 후보였다. 샌더스는 맘다니가 “정치, 경제, 언론의 기득권과 싸워 이겼다”고 말했다. 버니는 2016년과 2020년에 맘다미처럼 급부상하다가 민주당 지도부와 뉴욕타임즈 등 언론의 협잡으로 힐러리와 바이든에게 후보직을 뺏겼다. 맘다니의 승리는 그래서 단순한 노선 차이가 아니라 민주당을 몇십년째 잡고 있던 중도우파의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세대교체가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힐러리는 지난 20년간 민주당의 보이지 않는 보스였다.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만, 주요 인사 추천, 캠페인 자금, 언론 플레이, 당내 경선 룰, 슈퍼대의원 제도 등 모든 경로에서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웠다. 버니 샌더스가 두 번이나 당한 것도, 사실상 이 기득권 연합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맘다니는 거대한 후원도, 메이저 언론의 지원도 없이 순식간에 인지도와 지지도를 올리며 이겼다. 당원들과 시민들의 지지, 자원봉사, 거리 유세, 직접 조직한 풀뿌리 네트워크로 이겼다. 힐러리 체제 바깥에서 당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안에서 아무도 저항 못하던 힐러리의 벽을 깨고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무너진 건 쿠오모였지만, 균열이 간 건 클린턴 체제였다. 이제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더불어민주당처럼 미국 민주당도 개혁 & 뒤집기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