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가 잘하는 게 들어서면 과거 독재정부의 만행에 대해 조사하고 공개하고 사과하는 거.
그게 뭐 싶을 수 있지만 비엣남의 경우 우린 우리에게 적대한 적 없는, 같은 피식민 피해자 비엣남에 쳐들어갔던 거라 이걸 계속 문제삼자면 삼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우리 옆나라 일본은 그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서 오늘날까지 우리와 적대 중이다. 사과하고 재발방지하는 게 뭐가 힘들어서. 그걸 거부하면 대신 지불해야하는 비용도 분명히 생기는데.
이럴 때 정말 사과를 못하는 경우는 하나 밖에 없다. 앞으로 다시 침공할 계획인데 지금 사과해버리면 나중에 민망하잖아. 일본이 그래서 사과를 하는둥 마는둥 하는 거고.
트럼프가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상상해보면, 단순한 군사 행동이라기보단 정치, 경제, 안보가 복잡하게 얽힌 고위험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란은 단순한 봉쇄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반격 능력을 갖춘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강수를 뒀다. 왜일까?
첫째, 정보기관이 제공한 타격 대상이 실제 핵개발의 핵심이라면, 이란의 프로그램에 치명타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선 이미 농축 우라늄이 다른 시설로 옮겨진 뒤였고, 타격의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의도만큼은 분명했다. ‘결정적 한 방’을 노린 것이었다.
둘째, 이란이 반격에 나서 미국과의 전면전이 벌어진다고 가정하면, 트럼프는 9/11 이후 부시가 누렸던 애국주의적 지지처럼 내부 결속을 기대했을 수 있다. 물론 이번 경우는 미국이 먼저 공격한 것이기 때문에 똑같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미국 내 민주주의 체제와 법적 책임을 둘러싼 수많은 압박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셋째, 이란의 반격이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화로 이어지고,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 아이러니하게도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 셰일오일 업계는 단기적 호황을 맞을 수 있다. 셰일업계는 이미 2010년대 과잉 투자로 몸집을 불린 후, 팬데믹 시기 유가가 마이너스를 찍으며 줄도산을 겪었다. 현재도 상당수가 부채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상황인데, 유가 급등은 그들에게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되면 다시 도산 도미노가 시작될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단기 호황만으로도 ‘트럼프가 에너지 산업을 살렸다’는 프레임을 만들기엔 충분하다.
다만, 가장 뼈아픈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폭격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몇 달 안에 핵실험에 성공해버리는 경우. 그 순간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략적 패배를 넘어 존재론적 위기를 맞게 된다. 전쟁도, 제재도, 암살도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오면, 앞으로 중동의 질서는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질 것이다.
이후 상황 악화 정도는 이제 트럼프에게 달렸다. 하기에 따라 지금 멈추고 원상복귀를 위한 외교적 출구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자존심 때문에 계속해서 나쁜 선택을 이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란이다. 이란은 이미 공격을 당한 상태고, 국제적 명분도 확보했다. 무엇을 하든 ‘예상 가능한 대응’으로 간주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란은 지금까지의 행보로 보아, 비대칭 전력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 역량도 착실히 준비해왔다. 최근 생산된 미사일은 유럽 전역을 사정거리로 삼고 있으며, 러시아나 중국을 매개로 파키스탄·북한과의 거래를 통해 더 위협적인 기술 확보도 가능하다. 특히 핵개발이 본격화된다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나토 전체가 전혀 새로운 전략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이란은 이제 핵개발을 포기하고 바로 축출된 리비아의 카다피 길을 갈 것인지, 개발과정이 길었고 제재를 많이 받았지만 개발 성공후는 아무도 못건드는 북한의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하는데, 이렇게 쉬운 결정이 또 있나. 당연히 핵개발이다.
핵을 만드는 일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론적 근거가 이미 공개돼 있기 때문에. 우라늄 농축 시간이 아마 가장 큰 병목이고 국제사회의 시선이 문제인데 이란은 이미 국제사회의 시선과 미군의 공격을 감내 중이라 핵실험을 해도 미국이 추가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이제 문제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핵확산과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유럽의 중동 개입까지 얽힌 복합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의 결정은 한 나라의 선택이 아니라, 앞으로 수년간 국제 질서를 흔들 수 있는 방아쇠일 수 있다.
우린 이미 어른들 노는 큰 물로 나왔다.
이젠 옛날처럼 미국만 좇아다닌다고 월남전 특수 같은 거 안 떨어지고, 윤석열이 미국 가서 아양 떨어도 뭐 안나온다.
우리가 너무 커졌다. 이제는 미국도 우리를 업어주기 버겁다.
어릴 땐 새배하고 오천 원만 받아도 그게 큰돈이라,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그 어른이 위대해 보이지만,
지금은 우리도 장성해서 연간 소득이 수천만 원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수준의 떡고물을 바라고 따라다녀봤자, 그 주머니가 그렇게 깊지 않아.
큰 형님 미국도 힘들어 해.
애기 때 주머니에 있던 몇천원 던져주면 구세주처럼 쳐다봐준 건 귀여운데 이제 다 큰 놈이 수억을 바라는 눈초리로 따라다니면…. 내심 큰 형님도 이젠 우리한테서 주둔부담금 명목으로 용돈 더 뜯어갈 눈치인데…
이제 슬슬 내란에 참여한 군 쪽 인사들 개혁도 들어가야할텐데, 미래의 장병들과 지휘관들을 위해 이번에 확실한 기준을 정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쿠데타 발생시 모든 군인의 행동수칙: 무조건 반란군 우두머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체포하거나 제거한다.
상황 종료 뒤에 모든 군인은 누구 지휘 하에 어떤 진압 노력을 했는지, 못했으면 왜 못했는지 해명해야 한다. 못하는 사람은 반란 가담 여부 수사 받고 처벌 아니면 최소한 퇴역.
그리고 가담자는 당연히 모두 사형 선고해야 한다. 집행하지 않고 무기수가 되더라도 언젠가 집행할 가능성도 0%은 아니라는 걸 알고 겸허하게 사형수 생활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미래의 군 지휘관들도 고민이 줄어든다.
미래에 쿠데타 소식을 들은 모든 군인의 머리속에 첫 생각은 "아 ㅅㅂ ㅈ됐다 증명 가능한 방법으로 진압하러 바로 가야 돼. 나 도착 전에 끝나버려도 나 재수 없으면 영창간다. 빨리 가서 진압시도하는 영상 찍혀야돼!" 이어야 한다.
나토의 공식 이름이 북대서양 조약 기구다. 지리적으로 자리를 정해놨다. 북대서양, 미국과 유럽 끼리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럼 그 하는 일이 뭘까? 49년에 이게 만들어진 이유가 그때 한참 소련이 팽창중이어서였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하는 일이 러시아를 상대하는 일이다. 북대서양 국가들이 모여 만든 대 러시아 압박용 군사 조약 기구란 말이다. '니가 우리 중 하나라도 공격하면 우리가 전부 널 공격할 거란다' 하고 협박하는 도구. 이게 러시아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냐 하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한다고 하니까 침공해버렸다.
여기에 한국이 가야한다고? 우리가 왜 러시아 포위하러 가야하는데? 우리 러시아랑 사이 안 나쁜데? 러시아 뿐 아니고 중국도 때리자고 나토 파트너 그룹이라고 새로 만들어서 오라는 건데, 이건 중국/러시아와 척지기는 제대로 지는데 상호방위 혜택은 없는 이상한 그룹이다. 그리고 우린 중국 상대로 돈 벌어야하는데? 그리고 거기 가서 열심히 하면 정식으로 나토 멤버로 받아주나? 아니다. 멤버 필수 조건이 북!대!서!양!에 있어야 한다.
가면 도움 될 수 있는 건, 새로운 무기 시스템 기준 만들거나 할 때 동참 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거, 사이버전술, AI 등 기술 공유 기회가 생긴다는 거, 나토 활동에 협조함으로서 강대국들이 북한 등 한국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협조해줄지 모른다는 점 정도인데… 다 그냥 희망일 뿐이다. 나토를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아니고. 러시아/중국과 척지지 않고도 필요한 국가들과 따로 협상하면 된다. 세계 최대 핵무장 폭군 국가 러시아와 제대로 척지는 댓가를 미국이 챙겨주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가 러시아랑 싸우면 푸틴 절친 트럼프가 참 좋아도 하겠다.
권력은 부패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있는데, 바로 유권자의 권력이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탱크로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와 유튜브, 뉴스와 댓글을 통해, 바로 유권자의 손에 의해 서서히 고사한다. 정치는 혐오와 분열을 동력 삼고, 언론은 거짓과 선동을 흥행 코드로 삼으며, 자본은 모든 걸 왜곡한다. 결국 시민들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되고, 그 결과가 트럼프, 보우소나루, 윤석열 같은 인물들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가진 것 같은 나라에서도 가끔 이런 극우세력이 힘을 얻는 건 단순히 유권자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저런 막강한 권력의 연합체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건 단순한 시민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구조적으로 방어하는 장치다. 이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다. 이 개념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게 민주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원칙을 뜻한다.
실제로 독일은 이런 원칙을 헌법에 명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다시는 나치 같은 세력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기본법(Grundgesetz) 속에 강력한 민주주의 수호 조항들을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극단주의 정당이나 단체는 활동 자체가 금지되고 해산될 수 있다.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선출되었더라도 권리가 제한된다. 이를 담당하는 연방헌법수호청(BfV)은 정보기관이면서도 민주주의 파괴 세력을 감시하고 법적으로 대응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독일은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근데 나치 같은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되는 나라가 독일 뿐인가? 전세계가 필요한 조항이다.
한국에도 헌법 제8조 4항 위헌정당 해산이 이런 방어적 민주주의 제도에 해당되나, 부족하다. 이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사법기관이나 선관위가 정치적 충돌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로는 충분하지 않다. 혐오와 거짓, 반민주적 선동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징계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방어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구는 정치인, 언론인, 판사, 유튜버, 일반 시민 누구에게든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경고와 제재, 기소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사법체계와는 분리된, 민주주의 그 자체만을 지키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설계 원칙은 이 조직이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고 당연히 정권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임기를 없애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의 가치를 실제로 이해하고 실천해온 인물들이 처음 이 위원회를 설계하고 주도하며, 그 철학과 기준을 그대로 이어갈 후임을 길러내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는 인사권이 있는 대통령이나 국회 다수파가 위원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반격이 불가능한 체계가 핵심이다.
동시에 이 조직의 내부가 부패하거나 경직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장치들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의 가치 변화나 능력 저하를 감시하고 교체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헌신검증위원회'가 주기적으로 각 구성원의 활동과 태도를 점검한다. 일정 연령 이상 또는 일정 주기마다 가치 실천 능력과 판단 능력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모든 주요 결정은 이해관계자 배제 원칙의 이중심사제로 운영되며, 조직 외부의 이념적으로 호환 가능한 독립 감시기구가 정기 감사를 수행한다. 또한 각 구성원은 후계자 양성과 조직 철학 전수를 위한 심층 토론과 교육을 일정 비율 의무화하고, 그 과정도 기록되고 평가된다. 이 모든 장치는 조직의 철학과 목적이 시대를 넘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계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건 또 하나의 위원회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혐오와 거짓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기반이다. 시간이 지나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상식처럼 작동하는 사회. 그걸 위한 구조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지키지 않으면 무너진다. 이제는 그것을 지킬 방법을 제도화할 때다.
우리가 제도화와 운용에 성공하면 전세계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대부분 아직 자신들의 트럼프들을 퇴출시키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먼저 퇴출에 성공한 한국이 길을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 방어위원회, 혹은 민주주의 수호청 신설을 제안한다.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동의 전통적 맹주들—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간의 경쟁과 알력은 이 전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들 모두 표면적으로는 이란을 경계하며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는 '친미 진영'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중동 주도권을 놓고 뿌리 깊은 불신과 대립이 이어져 왔다. 특히 카타르와 사우디·UAE 사이의 갈등은 이란 위기에서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17년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가 단행한 카타르 단교는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니라, 체제 성격과 외교 노선을 둘러싼 정면 충돌이었다.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 하마스, 이란, 터키와 연계하며 걸프 보수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했고, 카타르를 고립시키기 위해 국경 봉쇄와 제재, 공중 통제 등 전면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카타르는 터키와 이란의 즉각적인 지원을 받아 체제를 지켜냈고, 이후 자신을 ‘중재자’, ‘중동의 스위스’로 포지셔닝하며 외교 자율성을 오히려 넓혀갔다. 2021년 알울라 회담을 통해 형식적으로 관계는 회복됐지만, 구조적 불신과 경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갈등은 단지 외교적 긴장에 그치지 않았다. 정보공작, 사이버전, 정치망명자 활용, 언론을 통한 상호 이미지 타격 등 다양한 형태의 사보타주가 실시간으로 벌어져 왔다. UAE가 카타르 내 쿠데타 시도에 연루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으며, 카타르는 알자지라를 통해 사우디 왕실 내부의 분열과 실정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이들 왕가 간의 경쟁은 단순한 체면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정통성과 생존 기반을 겨냥한 심리전이자 권력 투쟁에 가깝다. 이 정도의 적대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이란이라는 외부 위기가 발생하면 겉으론 단일한 대오처럼 보이더라도 내부에선 중심 무대를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이 불붙게 마련이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는 여기에 더해 오랜 종파 경쟁이라는 역사적 요소까지 더해진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이란은 시아파 세계의 혁명 국가로서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양국은 예멘, 레바논, 시리아, 바레인 등지에서 대리전을 벌여왔으며, 외교 정상화 이후에도 상호 신뢰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이란이 핵 위기와 미국과의 충돌 속에서 '이슬람 저항의 상징' 이미지를 다시 획득하게 되면, 사우디는 종파적 권위와 정치적 정통성 측면에서 모두 위협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종파적 경쟁은 종종 종교적 압박 조치로 이어진다. 사우디가 무함마드의 생가나 그 가족·동료들의 유적을 보존하기는커녕 철거하거나 개발해온 것도 단지 도시 계획이나 안보 목적 때문이 아니다. 이는 와하비즘이라는 국교 이념의 교리적 방침과 맞닿아 있다. 와하비즘은 무덤과 성지 숭배를 우상숭배로 간주하며, 경전 중심의 '순수 이슬람' 복원을 강조한다. 특히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사위 알리, 손자 후세인 등은 시아파에서 성스러운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들의 흔적을 사우디 내에서 지우는 행위는 시아파 종교 권위의 상징 공간을 구조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다. 이 또한 사우디가 자신들의 종교 해석 독점권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국가들 간의 알력은 이란과의 갈등이 격화될수록 더욱 민감하게 작동한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이란 견제에 필요한 안보 인프라를 공유하지만, 동시에 직접적 전면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이라는 국내 개혁 프로젝트를 위해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UAE는 이란과의 실무적 접촉을 유지하며 양면 전략을 펼친다. 반면 카타르는 이란과의 관계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유지하며, 하마스와 탈레반 등 비국가 행위자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함으로써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카타르·UAE·이란 모두 이 지역의 외교와 위기 대응에 매우 노련한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수십 년간 미국·러시아·중국·이스라엘·터키 등 외부 열강과, 시아파-수니파·민족주의-이슬람주의라는 내부 균열 속에서 살아남으며 자신들의 공간을 키워왔다. 정권 교체 위기, 제재, 외교적 고립, 군사적 포위 등을 버텨온 이 국가들은 단순한 중간국이 아니라, 능동적 조정자이자 전략적 플레이어다.
카타르는 알자지라를 통한 여론 형성, 세계 최대 규모의 LNG 공급망, 복수의 외교 채널을 무기로 미국·이란·하마스·탈레반과 모두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로 기능해왔다. UAE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이란과도 선을 놓지 않으며, 정보·보안 역량을 활용해 안보 균형을 맞춘다. 이란은 수십 년간 제재 하에서도 시리아·이라크·레바논·예멘을 통해 자국의 안보를 방어선 바깥에서 구축하는 전방위 전략을 유지해온 맹주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란-미국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 사우디·UAE는 반이란 기조를 유지하되 확전에는 선을 긋고, 카타르는 외교적 중재와 영향력 확대의 기회를 탐색할 것이다. 이 갈등은 겉으론 단일 전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걸프 내부의 주도권 경쟁과 종파적 균열이 복잡하게 얽힌 다층 전선이다. 이란은 이 틈을 인지하고 개별 협상, 시간벌기, 국지전 확대 등으로 대응해 갈 것이다.
결국 중동 질서는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역사와 전략이 교차하는 복잡한 무대다. 이 중 누구도 쉽게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며, 결정적 국면은 언제나 그 틈 사이에서 벌어진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사일보다도, 그 미사일을 쏘지 않고도 판을 바꾸는 자들의 움직임이다. 이란을 둘러싼 전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작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