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 발전이나 건축용 크레인 등 큰 감속비와 어마어마한 토크를 전달해야하는 기어박스에는 삼중 유성 감속기 three ring reducer가 들어간다.
보통 기어는 맞물리는 두 지점에서만 힘을 전달하기 때문에 충격과 진동이 크고 마모도 빠르게 진행되나 삼중 유성 감속기는 여러 개의 링과 플래닛 기어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면서 토크를 나눠서 받는다. 힘이 특정 지점에 집중되지 않고 원주 전체에 분산되니 훨씬 부드럽고 강력하게 동작할 수 있다.
이 구조 덕분에 같은 크기에서도 훨씬 더 큰 토크를 낼 수 있고, 진동이나 소음도 줄어든다. 내구성 역시 높아지니 유지보수 주기도 길어진다. 작고 가벼운 장치 안에서 고출력과 정밀도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정밀 제어가 필요한 산업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 고출력이 요구되는 풍력 터빈이나 광산 장비, 무겁고 험한 조건에서 쓰이는 군용 차량과 항공기 구동계에 사용된다.
몽골제국에서 봤을 때 고려는 먼 사촌 쯤 되는 느낌이었던 거다. 같은 북방 민족인데 한반도에 몇천 년 전부터 들어가서 농경문화도 만들고 해양 문화까지 만든 먼 친척. 자신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뭔가 되게 독특한 걸 이뤄놓은… 다시 포섭해서 같은 집안 사이로 지내고 싶은.
다른 민족은 정벌하고 넘어가거나 많이 반항하면 아주 절멸시키는 패턴이었지만 고려 상대로는 30-40년의 시간을 투자해 끝까지 정복했던 이유가 있었다. 정벌 성공 뒤에는 완전히 제국으로 병합하지도 않고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그냥 눌러놓는 게 아니라 아예 몽골제국 지배층으로 끌어들이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쿠릴타이에서 황제 선거 투표권이 주어진 피정복민도 고려 뿐이었다. 충렬왕이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면서 부마가 됐고 충선왕도 쿠빌라이 손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예 개경 고려왕보다 북경에서 벼슬하며 살았던 사람.
일반적으로 피정복지 민족을 흡수하려면 그 지역에서 혼혈을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하는데, 몽골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자신들의 혈통을 순수하게 지킨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수많은 혼인과 개종을 통해 넓은 지역을 통치했고, 몇대 지나지 않아 몽골 지배층이 현지화됐다. 타 민족의 피를 자신들이 흡수해 그 민족을 통치한다는 개념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다른 정복지에서 여성 공납을 그렇게 대규모로 요구한 기록이 없다. 고려에서만 매년 수백명씩 몽골 수도로 백년 동안 데려갔다. 이건 자신들의 피에 고려 혈통을 섞겠다는 의도였을 가능성도 보인다.
게다가 고려는 일본, 남송 등을 관리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꼭 혈통으로 따지지 않아도 몽골 자신들은 해군이 없고, 송나라를 정복해도 송군을 충분히 못믿고, 차라리 고려를 몽골제국 일원으로 끌어들여 해군으로 이용할 필요성도 충분히 있었다.
랩 음악의 역사를 얘기할 때 사람들은 보통 브롱크스의 흑인 아티스트와 거리 문화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는 이 통념을 바꾼 그룹이었다. 단순히 백인 힙합 그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랩을 미국 주류 대중음악 무대에 끌어올린 ‘기록 제조기’였기 때문이다. 1986년 데뷔 앨범 Licensed to Ill은 역사상 최초로 플래티넘을 기록한 랩 앨범이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첫 힙합 앨범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런DMC 나 투팍이 아니라 비스티 보이즈가 최초 히트 랩 앨범이었다. 당시 랩이 ‘흑인 하위문화’로만 취급되던 분위기에서, 이들의 성공은 장르의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이 사람들이 랩 음악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냐 하면 비스티 보이즈가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 초·중반, 미국 랩 음악 시장은 연간 수천만 달러 규모에 불과했다. 메이저 레이블 입장에서 힙합은 틈새 장르였고, 전국적으로 크게 히트한 앨범도 손에 꼽았다. 그런데 Licensed to Ill은 1,0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단일 앨범이 당시 전체 랩 음반 시장 규모를 몇 배나 뛰어넘는 매출을 올렸다. 이후 메이저 레이블들은 랩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고, 시장은 불과 몇 년 만에 5배 이상 커져 수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은 미국 TV에 출연한 첫 랩 그룹 중 하나였고, 방송에서 랩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일찌감치 나섰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LL Cool J를 발굴해 데뷔를 돕기도 했고, Run-D.M.C., Public Enemy, Cypress Hill 등과의 협업과 교류를 통해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85년, 마돈나의 ‘Like a Virgin’ 투어에 오프닝 게스트로 합류한 사건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당시 마돈나 공연은 미국 팝 시장의 절정 무대였고, 관객은 대부분 팝과 록을 즐기던 백인 10대·20대였다. 미국 주류 중에서도 주류 소비층이었다. 그 무대에 랩을 들고 등장한 세 명의 백인 청년은, 이전까지 랩을 TV나 특정 문화권에서만 접해보던 청중에게 “랩도 멋질 수 있다”는 첫인상을 남겼다. 유머와 반항심, 록 공연 같은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하며, 랩을 ‘다른 문화의 음악’에서 ‘미국 청소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확장시킨 순간이었다. 백인 청소년들이 랩 앨범을 사고, 패션을 모방하고, 학교에서 라임을 흉내내기 시작한 출발점이 바로 이 투어였다.
비스티 보이즈의 무대는 단순한 히트곡 이상이었다. 라이브에서 라임을 주고받는 다중 보컬 방식, 재즈·펑크·하드록·클래식까지 가리지 않는 샘플링, 장르와 장르를 섞는 감각은 이후 힙합 듀오나 그룹들의 교본이 됐다. ‘얼터너티브 힙합’이라 불릴 새로운 흐름도 여기서 시작됐다. 상업적인 성공만 이룬 게 아니라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힙합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후배 아티스트들의 증언에서도 선명하다. Eminem은 여러 차례 이들의 팬임을 밝혔고, 2018년 앨범 Kamikaze 커버는 Licensed to Ill을 그대로 오마주했다. Nas는 “MCA와 함께 작업한 것이 음악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Kid Rock은 데뷔 앨범에서부터 비스티 보이즈의 스타일을 짙게 반영했고, 나중에는 헌정 무대에서 MCA 역할을 맡았다. Fucked Up의 Damian Abraham은 “랩에 빠진 건 Beastie Boys 덕분”이라고 했으며, Cool Kids는 스스로를 “Beastie Boys의 흑인 버전”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미국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 초 한국에서 랩과 록을 결합한 음악을 처음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비스티 보이즈와 유사한 접근 방식을 보여줬다. 서태지는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 생소하던 랩과 록, 댄스를 결합해 10대·20대 청중을 사로잡았는데, 이런 장르 혼합과 무대 에너지, 스타일링, 유머러스한 퍼포먼스는 비스티 보이즈가 1980년대 중후반에 이미 미국에서 개척한 영역과 맞닿아 있었다. 직접적인 표절이나 모방이 아니더라도, ‘랩은 특정 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와, 록 밴드 출신이 랩을 흡수해 새로운 대중음악을 만드는 전략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비스티 보이즈는 한국 초기 힙합·랩 기반 대중음악 형성에도 간접적이지만 뚜렷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발표한 *Paul’s Boutique*는 평단에서 ‘힙합의 Sgt. Pepper’s’라 불리며 랩의 예술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후에도 랩·록·전자음악을 넘나드는 실험을 이어가며, “장르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남겼다.
결국 비스티 보이즈는 ‘백인 래퍼의 성공 사례’로만 정의할 수 없다. 최초의 플래티넘 랩 앨범, TV 출연, 마돈나 투어로 백인 청소년층의 랩 수용 확대, LL Cool J 발굴, Eminem과 Nas를 비롯한 수많은 후배들의 음악적 증언,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다른 나라 아티스트에게까지 전해진 장르 혼합과 대중화 전략. 이 모든 업적이 합쳐져, 비스티 보이즈는 랩 음악의 흐름을 바꾸고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그룹으로 남게 됐다. 가장 인기있는 랩 그룹일 뿐 아니라 초기 그룹들 중 아직까지 활동중인 거의 유일한 랩 그룹이다.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stan 으로 끝나는 나라 이름들은 과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던 나라들. 페르시아어로 사람이 서 있는 땅을 의미해서 카자흐스탄 하면 카작들이 사는 땅.
근데 페르시아어도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이게 서쪽에 가면 라틴어로 서다라는 의미의 stare에서 영어 status, stand, state 등 단어가 되면서… 의미도 비슷.
강원도 상동 광산에서 나오는 텅스텐이 한국전 직후 한국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품질도 좋았는데 80년대부터 중국에서 수출하는 텅스텐에 가격 경쟁에서 밀려서 92년에 폐광됐다. 채굴권은 이미 폐광된지 오래된 뒤 이리저리 인수되다가 지금은 캐나다 알몬티 Almonty라는 회사에서 갖고 있고 다시 개발 시작하겠다고 나서는 중이다.
텅스텐은 현대 무기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희귀금속이다. 선단 공정 반도체 생산에도 필요하다. 텅스텐 시장은 중국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고 수출 제한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 등은 장기적으로 타격용 무기 제작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나… 우방국 캐나다가 상동 광산에서 채굴해서 공급하면 한동안은 해결된다. 왜냐하면… 상동 광산이 세계 최대 텅스텐 매장 지역 중 하나다.
텅스텐이 귀하긴 하지만 뭐 석유같은 건 아니기 때문에 캐나다 회사로 넘어갔다고 나라가 망하고 땅치고 후회해야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략적 자원이기 때문에 좀 아쉽긴 하다.
"가아프는 아들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는 월트 옆에 누워 소년의 신선한 숨결을 맡으며, 큰애 던컨의 숨결이 어느 순간 성장한 사람처럼 시큼해졌던 때를 떠올렸다. 던컨이 여섯 살이 된 직후, 그의 숨결에서 잠든 사이에 나는 퀴퀴하고 약간 불쾌한 냄새를 맡았던 것은 가아프에게 불쾌한 경험이었다. 마치 그 안에서 이미 서서히 죽어가는, 즉 부패가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다." – 존 어빙 "가아프가 본 세상"
1903년, 지금의 파나마는 원래 콜롬비아 영토였다. 당시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운하 건설권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러나 콜롬비아와의 협상은 결렬되었고, 미국은 곧바로 파나마 지역에서 무장봉기를 지원했다. 며칠 만에 파나마는 독립을 선언했고, 미국은 신생 국가의 국방을 직접 책임지는 조약을 맺었다. 실질적으로 미군이 콜롬비아 땅을 빼앗아 괴뢰 정부를 세운 셈이었다. 이후 미군은 운하 지대를 장악했고, 1914년 마침내 파나마 운하가 완성됐다.
파나마 운하는 단순한 수로가 아니라, 거대한 인공 호수와 수문 시스템으로 배를 들어 올리고 내리는 독창적인 구조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평균 해수면 차이는 약 20cm로 미미하지만, 운하는 중간에 해수면보다 높은 육지를 지나가야 하므로 바닷물 직접 연결이 아닌 가툰호수(해발 약 26m)를 경유하는 방식을 택해 배를 단계적으로 올리고 내린다. 한 척이 통과할 때마다 약 5천만 갤런의 민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며, ‘파나막스’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운하의 폭과 길이는 세계 해운업 표준을 형성해 전 세계 선박 설계에 영향을 주었다.
수십 년간 이 시스템은 열대성 폭우 덕분에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별도의 동력 없이 중력만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었고, 호수 수위도 금세 회복됐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줄고 가뭄이 잦아졌다. 여기에 통행량 증가로 하루 선박 통과 횟수가 늘면서 호수 수위는 예전처럼 유지되지 않는다. 물 부족이 심해지면 통과 가능 선박 수를 제한해야 하며, 이는 곧 국제 물류 병목으로 이어진다.
일부는 바다로 빠져나간 물을 대형 펌프로 다시 호수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하지만, 하루 수십 척이 사용하는 물을 26m 높이로 퍼올리려면 막대한 전력과 설비가 필요하다. 여기서 드는 에너지는 물의 질량(m), 중력가속도(g), 높이(h)를 곱해 계산하는 ‘mgh’로 표현된다. 이 값이 바로 물을 다시 올리는 데 필요한 이상적인 에너지이며, 실제로는 펌프 효율과 마찰 손실까지 더해 훨씬 큰 비용이 든다. 연간 수천만 달러의 전력 비용과 유지·보수, 염분 제거, 환경 부담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해법이 아니다.
한편, 멕시코 테우안테펙 지협을 관통하는 대체 운하 계획도 거론된 적이 있다. 이는 파나마 운하 혼잡이나 물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지만, 지형·정치·환경 문제로 실현이 쉽지 않다. 더 멀리 보면 북극 해빙이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북극 항로가 상업적으로 열리면, 아시아-유럽, 미 서해안-동해안 구간에서 파나마 운하 의존도가 일부 줄어들 수 있다.
결국 파나마 운하는 100년 넘게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진 에너지’—빗물과 중력—를 활용해 세계 무역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무료 자원이 고갈되면서, 이제는 mgh로 환산되는 진짜 에너지 비용과 미래 경쟁 환경까지 함께 직시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