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의 [제5원소]는 1997년 개봉 당시부터 “스토리보다 옷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뤽 베송의 [제5원소]는 1997년 개봉 당시부터 “스토리보다 옷이 더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 폴 고티에의 무대였다. 그는 단순히 배우 몇 명의 옷을 입힌 게 아니라 약 천 벌에 달하는 모든 등장인물의 의상을 직접 설계하고 검수했다. 엑스트라의 군중 장면조차 의상으로 세계관을 채워 넣은 것이다. 편집과정에서 삭제돼 영화에 포함되지 않은 장면에까지 그의 손길이 갔다. 패션쇼 몇 시즌을 영화 한 편에 쏟아부은 셈이었다. 그가 합류한 배경에는 뤽 베송의 분명한 판단이 있었다. “미래를 할리우드식 우주복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이미 코르셋, 젠더 경계 해체, 해군풍 등으로 이름을 떨친 고티에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로 촬영 현장에 상주하며 배우 피팅과 의상 수정을 챙겼고, 본업 컬렉션 일정까지 줄여가며 몰입했다. 결과는 강렬했다. 밀라 요보비치의 밴디지 의상은 “원시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동시에 “섹슈얼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화 아이콘이 됐다. 블루 디바의 드레스는 오페라와 SF의 결합을, 우주 스튜어디스 유니폼은 패션쇼의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듯한 효과를 냈다. 줄거리를 잊어도 의상은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고티에에게도 전환점이었다. 그는 이미 패션계의 아방가르드 아이콘이었지만, 제5원소 이후에는 영화와 대중문화 전반을 가로지르는 이름이 되었다. “패션쇼보다 더 큰 무대였다”는 그의 회상처럼,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그 순간이 전 세계적 인지도와 새로운 위상을 안겨주었다. 오늘날에도 이 영화는 “패션이 어떻게 영화의 언어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작업은 이후 할리우드에 ‘패션 거장과의 협업’이라는 흐름을 본격화시켰다. 거장 디자이너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영화 전체의 패션을 한 거장 스타일로 통일하는 일이 잦아졌다. [헝거 게임] 시리즈에서는 알렉산더 맥퀸의 감각이 큰 영향을 줬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소피아 코폴라가 마놀로 블라닉과 협업해 18세기 복식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었다. [대부호 개츠비] 리메이크에서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직접 참여해 재즈 시대 의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했고,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니콜라스 제스키에르의 루이 비통 스타일이 반영됐다. 이 모두가 제5원소가 연 길 위에서 탄생한 사례들이다. —- 흥미로운 건, 게리 올드만이 제5원소에 출연한 이유다. 그는 뤽 베송이 자신의 감독작 [Nil by Mouth] 제작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 대본을 꼼꼼히 읽지도 않고 수락했을 만큼, 처음에는 영화 자체에 큰 애착을 두지 않았다. 실제로 개봉 당시에는 의상과 연기를 불편하게 느꼈다고 말하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별생각없이 보는 오락영화로 생각하고 살짝 부끄러워했던 같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영화가 대중문화에서 차지한 독특한 위상을 보며 그의 태도도 달라졌다. 한때는 “견디기 힘들다”고 했던 영화가 지금은 자신을 상징하는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올드만 역시 뒤늦게 그 의미를 인정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