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September 2025

“그림자가 없군요.” “예?”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나는 다시 언덕 아래의 그 도시를 뚫어지게 바라…

"그림자가 없군요."

"예?"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나는 다시 언덕 아래의 그 도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꽤 멀긴 했지만, 건물마다 그 옆쪽 건물에 드리우고 있어야 당연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있지않은가?

"지금은 해가 없잖아요."

이루릴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빛은 있어요. 그렇다면 그림자도 있어야 되지요. 하다못해 건물 색깔의 짙고 엷음은 있어야하죠. 하지만 저 도시의 건물의 벽을 보세요. 정면의 벽이든 측면의 벽이든 모두 같은 색깔이예요. 모든 건물들이 다 어느 면에서든 비슷한 색깔을 내고 있어요."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렇다, 저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아니, 어떻게 건물의 사면이 모두 같은 색깔을 낼 수 있는가? 같은 회색이라도 빛 때문에 정면은 푸르스름한 회색, 측면은 암회색, 뭐 이렇게 차이가 나야 한다. 하지만 저 건물들은 마치 명암에 대해 배우지 못한 어린애가 마구 그린 그림처럼 상하전후좌우의 색깔이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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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태양이 정확히 위를 지나가는 하와이.

현실이 옛날 게임 그래픽 느낌이 됨.

저때는 다 로마제국이었지만,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지역은 사실 로마제국에 정복되기 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저때는 다 로마제국이었지만,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지역은 사실 로마제국에 정복되기 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미 정복해서 그리스화 해놓은 상태였다. 로마제국 땅이 되고나서도 알렉산드로스가 심어놓은 그리스 문화는 더 융성해서 아예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공용어가 그리스어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아랍 제국의 등장 전까지 최소 1000년 간은 그 지역이 그리스 문화권이 됐다.

해서 사실 신약성경 원어는 그리스어였다. 히브리어는 그 때 이미 지금 카톨릭에서 쓰는 라틴어처럼 유대의 성전에서 사용하는 율법용/의례용 언어에 가까웠다. 히브리어는 사실 기원전 1000년 이스라엘 왕국 때부터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때까지 몇백년 간 일상어로 쓰였을 뿐, 그 이후로는 유대인들 사이에 히브리어/아랍어와 같은 북셈어인 아람어가 대세였다. 당시 레반트 지역과 동지중해의 공용어는 그리스어였고 상업 행정 문화 종교에 지배적으로 쓰였다.

예수와 제자들의 모국어는 아람어지만, 지금 유럽사람들이 대부분 영어에 노출되듯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신약도 그리스어에 아람어 표현이 일부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새로운 경전으로 널리 전도 하려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역어였던 아람어보다 제국의 공용어 그리스어로 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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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는 그 이후로도 유대인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율법 공부 할 때 쓰던 언어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유럽 시오니스트 운동 속에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 등 언어학자들이 이미 사어가 된 히브리어를 연구하고 필요한 신조어들을 만들거나 아랍어/아람어/유럽어에서 차용해 채워넣는 작업을 하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1900년부터 실제로 일상언어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유럽에 어느 국가가 어느날 갑자기 "로마 제국 시절의 전통을 살려야해" 하며 라틴어를 일상어로 쓰기 시작하는 상황을 상상하면 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는 강경 시오니스트들이 그 땅으로 이주했기에 이미 히브리어를 일상어로 쓰는 사람이 80-90%에 달했다. 아직 나라도 없이 여러 국가에 흩어져 있는 공동체였으나 50년만에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서 적어도 한가지 운전중 복용하면 안되는 약물 양성 반응…

미국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서 적어도 한가지 운전중 복용하면 안되는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오는 비율: 56% (2020년)

운전자 아무나 잡고 검사해서 양성 나오는 비율: 20% (2013-2014년)

미국에서 운전 중에 내 주변에 차가 5대가 보이면 그 중에 하나는 헤롱헤롱한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줄 알고 방어운전 해야 한다. 모르고 운전할 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운전을 이상하게 해"하지만 알고나면 "아… .. 일종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구나.." 가 된다. …

사람 사이에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철이 든다는 게, 내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다양한 이유로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인정하고 대한다는 뜻인 것 같다. 타인이 어떤 일에 나와 똑같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적어도 내 삶에서 나로부터 시작된 다툼은 다 사라진다.

Jake Deschain shared a profile.

사실 중남미 정글에서 옛 문명 유적을 찾기 힘들었던 이유 중에는… 정글이라는 가장 큰 원인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돌 같이 수천년 버티는 재료가 아닌 나무 등으로 건축됐던 건물이 많았던 걸로 추측됐었다.

근데 이제 라이다 등 기술로 정글도 뚫고 항공촬영을 통한 수색이 가능해졌고, 나무, 흙으로 만든 제방, 도로 등도 발견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고고학에서 놀라운 발견은 한동안 저 지역에서 나올 것 같다.

예전엔 마야 문명이 수백만 명 인구 규모였을 걸로 추정했지만 지금은 최소 1500만은 됐을 걸로 보인다. 서로 연결된 숲속 소규모 도시가 수백개다. 석회로 마감된 흰길이 수십킬로 이상 연결돼 있었다. 2000만명 정도는 지탱했을 것 같은 저수지, 제방, 운하, 배수시설 등 거대 농업 인프라가 발견된다. 계단식 밭, 고원 배수 시스템, 제방 등 생각보다 발달된 농업 기술이 보인다.

기록 문자가 없었을뿐, 고대 그리스와 비교해도 될 만한 수준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이런 평가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필요로 할 때 자신…

내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 이런 평가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이 할 일을 했고 이제 은퇴했다. 애초에 바란 적 없는 영광을 더 누리겠다고 이것 저것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은퇴한 자리에서 은퇴한 사람이 할일을 하고 있다.

칭찬받을 일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욕먹을 일이라고 피하지도 않는다. 세상이 모두 기대하고 있는 일이라고 그걸 하지도 않고, 오해받고 있다고 특별히 그걸 풀려하지도 않는다. 자신이 판단했을 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걸 할 뿐이다.

문재인을 그냥 혐오하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날아오는 운석을 튕겨내 지구를 구해도 왜 운석을 지구 궤도에 잡아 채굴할 수 있게 하지 않았냐고 욕할 거고, 그 외 민주진영 사람들 중에 문재인을 오해하게 되는 이유 중에 위에 이야기한 특성이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와 세상의 일반적 관계 정의를 통해 그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그의 행동이나 행동 부재의 동기를 일반적인 사람 판단 기준으로 봐서는 해석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사실 문재인과 친문과의 관계도 이 관점에서 봐야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다. 일반적인 정치인과 그 계파의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느슨한 계파는 없다. 정권 동안 잠시 연대한, 서로 다른 존재로 보는 게 맞다.

자잘한 행동의 동기를 유추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냥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판단해보면 문재인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래도 힘들면 이름을 지우고 해놓은 일을 수치화하고 리스트로 나열해 놓고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이재명 이전 대한민국에서 배출된 최고의 대통령 중 하나다.

남편: “날씨 진짜 좋은데 어머니랑 같이 어디 산책이라도 가자.” —- 아내: “뭐? 날씨가 좋은데 나랑…

남편: "날씨 진짜 좋은데 어머니랑 같이 어디 산책이라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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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뭐? 날씨가 좋은데 나랑 안보내고 어머니랑 가자고? 식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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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예전 같으면 나가자고 해도 방안에서 게임만 하던 놈이… 사람을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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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일을 해석하는 방법은 80에서 120까지 다양하게 있다.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딱 들었을 때 "100이네."할만한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80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120이다. 그리고 80과 120은 너무 달라서 그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생긴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똑같은 현상의 다른 해석만 가지고도 서로 싸울 명분이 둘 다 모두에게 생긴다. 명분만 보고 싸우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럼 민주진영같이 할일은 많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논란에 허비할 에너지가 없는 조직은 이런 무에서 창조되는 유같은 실체없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우리 모두 그냥 "내눈에 120으로 보이는 거 보면 어딘가에 80이라고 보고 있을 사람들이 있겠군."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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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안되는 이유.

1.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접하면 대부분 100이라고 할 일이지만, 이 일을 80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통해 전해들으면 이건 80이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 그렇게 느껴진다. 120으로 처음 접한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 많은 사람들은 100 위치에서 80과 120을 모두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이 정한 수치에서 1만 달라져도 선제공격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이라도 내주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남은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3. 이 일을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보려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걸 40이라고 우겨서라도 이걸 80쪽으로 끌어가려는 사람들이 있고, 160이라고 주장하며 120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4. 이걸 모두 잘 배합하면 지금의 혼돈이 생겨난다.
5. 근데 세상이 혼돈인 것 같다도 대다수는 100을 보고 100이라고 생각한다. 80, 120, 40, 160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일부다. 시끄러워서 그렇지 소수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 혼돈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시끄러운 유튜버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아니라 우리 대중이 선동을 무시하는 게 우선이다.

유로/엔/파운드가 1군 기축통화인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유럽중앙은행/일본은행/영란은행이 무제한 통화스와…

유로/엔/파운드가 1군 기축통화인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유럽중앙은행/일본은행/영란은행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는 거다. 한국이 미국과 무제한 달러 스와프를 체결하면 원화 뒤에 달러가 보증을 서주는거라 원화가 달러/유로/엔/파운드와 함께 기축통화권에 편입된다. 1군은 못돼도 2군은 된다.

그게 되면 이런 효과가 생긴다.

– 외환위기라는 리스크가 그냥 소멸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0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미국에서 급한대로 빼다 쓰면된다.

– 수입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에 환율과 물가 안정이 특히 더 중요한데, 달러와 원화 사이 급등과 급락에서 오는 취약점이 거의 사라진다. 원유 원자재 가격 불안이 많이 줄어든다.

– 국가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져서 국채 금리가 떨어진다. 기업들이 채권 발행할 때도 이자 비용이 줄어든다. 금융기관의 외화 조달 비용도 내려간다. 그냥 금융의 모든 면 구석구석에서 공짜로 돈을 더 벌게 된다는 뜻이다.

– 지금은 4천억 달러 이상 보유하느라 미국 국채 같은 저수익 자산에다 어마어마한 돈을 묻어두는 건데, 무제한 스와프가 있으면 그 대부분을 다른 곳에 투자해도 된다.

– 무역 결제에서 원화를 사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상대편에서도 원화를 보유할 가치가 생겼으므로. 보유한 원화를 처분하는 것도 쉬워지므로.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액"이 어마어마한 돈이긴 한데, 무제한 달러 스와프를 체결해준다면 내가 보기엔 그게 훨씬 유익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장점들이 바로 미국이 이걸 허용하기 힘든 이유라는 점이다. 미국이 무제한 보장해줬다가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나면? 중국과 분쟁이 터지면? 부동산이나 건축업계 발 경제 불안이 터지면? 미국 경제에 무리가 갈 정도로 달러를 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도 지금까지 G7급 파트너와만 맺어왔다. 너무 많이 받아주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므로. 한국에게 이걸 주면 인도, 브라질 등도 무역 협상에서 같은 조건을 요구하게 된다.

미국이 거액을 뜯어내려할 때 받아치기 위한 제안으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가지 말라고 잡는데도 현대 LG 직원들 한국으로 무조건 데려온 것도 포함. 👏👏👏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는 독일어 오페라를 의뢰해 모차르트가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을 빈에서 무대에 올릴…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는 독일어 오페라를 의뢰해 모차르트가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을 빈에서 무대에 올릴 수 있게 했고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줬다. 근데 같은 요제프 2세의 개혁으로 화려한 장례가 금지됐고 대부분 시민이 공동묘지 공동 무덤에 묻히게 됐다. 1791년 12월 빈에서 사망한 모차르트도 그래서 묘지나 묘비없이 다른 무명인들과 함께 매장됐기에 정확하게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 훗날 이 공동묘지를 폐쇄 정리하고 그 자리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기념적 무덤을 만들었다. 빈 중앙묘지에도 기념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