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인류의 흔적 1

1. UAE 두바이 주메이라 섬

2.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

3. 팔레스타인 가자 자발랴

4. 일본 후쿠시마 제철소

5. 부산 HMM PSA 신항만

1. UAE 두바이 주메이라 섬

2. 사우디 아라비아 메카

3. 팔레스타인 가자 자발랴

4. 일본 후쿠시마 제철소

5. 부산 HMM PSA 신항만
2010년대 초중반만 해도 베이징은 세계 최악의 도시군에 속했다. PM2.5가 80~100㎍/㎥를 넘나드는 날이 흔했고, 바람이 멈추면 스모그는 며칠씩 머물렀다. 그런데 2013년 ‘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달라졌다. 공무원 승진도 공기질로 결정되고, 실패하면 경질되는 인사 시스템이 핵심이었다. 중국식 행정 동력이 가장 강하게 작동한 순간이었다.
2013년 이후 첫 감사에서 거의 2만명의 공무원이 징계 받았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었고 대도시 일자리가 줄었지만 큰 공장들을 폐쇄하거나 지방으로 내려보내는데 성공했다. 가정난방용으로 석탄 등 매연을 많이 내는 시설들을 거의 전부 정부에서 비용을 주고 전기와 가스로 바꿨다. 전에 주목받지 못하던 자동차산업을 전기차산업으로 탈바꿈하며 매연 자체도 확 줄여버렸다. 농촌에서 농사 후 쥐불놓는 전통을 바이오연료 등 생산 현대적 처리 방식으로 바꿔줬다. 베이징의 지하철 노선은 2002년에 54km, 2013년에 440km에서 2024년 879km로 늘려 자동차 매연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도 했다. 수도권까지 하면 서울도 1300km가 넘지만 서울 지하철 노선만 하면 아마 300km 수준인 걸로 안다. 중국은 이제 인공위성으로 감시하다가 대량 연기가 감지되면 바로 지역 공무원들이 출동해 해결하고 있다.
그 결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베이징은 최근 30~40㎍/㎥까지 내려왔고, 상하이는 50대에서 20대로, 광저우는 더 낮은 수준을 유지하며 추가 하락을 이루었다. 청두·정저우처럼 지형적 악조건을 지닌 내륙 대도시조차 90~100대에서 40~50대로 움직였다. 급격한 하강 곡선이라는 점에서 중국 5대 도시의 변화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반면 델리·라호르·다카 등 인도 주요 도시는 여전히 80~150㎍/㎥ 수준이다. 이 대비 속에서 중국은 ‘오염 대국’에서 ‘속도전 성공 사례’로 위치가 바뀌었다. 서울은 15-20㎍/㎥ 다.
중국의 방식이 다른 나라에 그대로 이식되기는 어렵다. 공장 이전, 보조금, 대중교통의 대대적 확대, 농촌 난방 전환까지 사실 기존에 있던 대책들인데 권위주의 국가의 정부가 나서서 전방위 정책을 단기간에 밀어붙여 해결했고,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도시 대기질이 단기간에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행정 구조가 무엇인지는 여러 나라가 참고할 만하다.

수년전에 간이 먼저 작고하시지 않았을까
Dancing Through the Rain
I stepped out into the storm tonight
Rain kissed my face like it knew my fight
Streetlights hum while shadows sway
She whispered soft
“It’s just a day”
[Prechorus]
The world spins fast
It never waits
But what if I decide my fate
[Chorus]
We’re dancing through the rain
Laughing through the pain
Spin me around
Don’t let me fall again
Oh dancing
Dancing through the rain
[Verse 2]
Her voice lingers like a fleeting dream
Soft as silk yet sharp as a moonbeam
The puddles ripple with our beat
Two hearts collide where the night and rain meet
[Prechorus]
The world spins fast
It never waits
But what if I rewrite my fate
[Chorus]
We’re dancing through the rain
Laughing through the pain
Spin me around
Don’t let me fall again
Oh dancing
Dancing through the rain
https://www.youtube.com/watch?v=zEzedWroGAY&list=PLe0eaHQUUj7CWHLazOJKH27WAkyuaxZOg&index=5

저.. 혹시…. 법인세를 올리는 건 고려해보셨는지… 필요할 때 조금씩 올리는 건 괜찮습니다. 사실 차등을 둬서 최상위 세율구간을 어떻게든 올리면 90% 넘어가도 경제 엄청 활황 됩니다. 역사적으로 증명 가능합니다. https://ourworldindata.org/…/top-income-tax-rates-piketty
미국: 1944년부터 1963년까지 최고세율 94%까지 유지했습니다. 1970년까지를 The Great Compression 대압축시대라고 합니다. 양극화가 역전돼 계층간 소득이 상대적으로 균등해졌기 때문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고 기업이익이 노동자에게 직접적으로 배분됐습니다. 사장이 이윤의 90%를 가져가려고 마음먹어도 어차피 세금으로 대부분 내기 때문에 차라리 임금을 올려 고급인력 채용을 쉽게 하고 채용을 늘려 사업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기업 투자와 임금, 복지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다양한 컨트리클럽, 별장 등 회사 유흥 시설을 너도 나도 짓기도 했습니다. 안그러고 이윤으로 잡히면 어차피 세금으로 나가니까. 경제에 돈이 팍팍 순환됐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낙수효과의 약속 대신 실질 소득이 올라갔던 이때가 가장이 혼자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했던 그 시절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 전후 70년대까지 최고세율 75-90%를 유지했습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산층이 늘었고 투자가 늘었습니다. 대부분 연평균 3~6% 성장했습니다. 대부분이 고도성장기를 겪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감세를 기점으로 HW 부시, 클린턴으로 이후 쭉 이어지는 중도 신자유주의로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 다시 급등하면서 2020년대에는 192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국도 대처 이후 비슷한 경로를 겪습니다. 미국은 1986년에 최고세율을 28%로 깎았다가, 양극화, 금융 자본 시장으로의 부와 주도권 집중 가속, 사회보험 재정 남용, 공공투자 감소, 특히 연방재정 적자가 겹쳐 폭폭폭발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레이건 말기에는 감면과 공제 폐지, 간접세 증가 등으로 실질 세부담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명박근혜 윤석열 때는 항상 소득세를 낮추고 서민에게 더 부담이 되는 간접세를 올렸습니다. 특히 박근혜 때 범칙금 태풍이..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최고세율을 극단적으로 낮추지 않은 나라들은 중산층 붕괴를 매우 느리게 겪었고 특히 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전까지는 매우 안정적인 경제를 즐겼습니다. 자본, 부동산, 배당에 대해 과세 구조를 유지했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세율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했습니다. 각국에서 정부의 서비스로 돌려받는 부분까지 함께 감안하면 일본 독일 프랑스의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은 훨씬 낮아집니다. 일본은 정책이 정권에 따라 좀 극단적으로 휘청이긴 합니다.

‘이제 국회에서 협조해 줄 수 있는 의석은 없지만 멀리서 응원할께요, 검사 여러분. #iam검사 ‘
정의당이 보기에 검사들의 명령권자에 대한 항명은 권리거든. 근거없는 검찰공화국의 관습법적 권리.
—-
전에는 친낙파도 있고, 박지현도 있고, 이재명 대표 공천권 뺏어볼려고 혀 낼름거리던 중진들도 있어서 정의당 인터뷰까지는 안따도 됐었는데 이제 민주진영 내부에는 저쪽에서 활용할 인물이 마땅히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리 박용진까지 품어버려서… 이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 까는 멘트 따려면 원외 정의당까지 찾아가야하는 가여운 언론… ![]()
(김두관 김부겸은 요즘 뭐하냐 중도보수 선언하니까 민주당은 보수 못한다고 겨우 하루 불끈하고 조용? 민주당이 너무 보수적이면 정의당으로 가셔도 되는데…)
#정의당 #검찰 #친검
검색도 제대로 안되는 페북 시대는 후세에 어떻게 기록되려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글을 쓰지만 며칠 안에 파묻혀 사실상 사라지는 개별 생산물 기록의 암흑기? 페북 이전 거의 모든 생산물은 인터넷 아카이브에라도 남지만 페북에 남긴 글은 사실 영원히 접근 불가라고 봐도 된다.
나중엔 AI 훈련용 자료로서 메타만 좋고 사용자들은 쓸 수록 손해보는 구조라 메타에게 유리하긴 한데, 이런 구조는 AI 시대 전에 디자인 됐다. 이렇게 글을 찾아보기 힘들 게 만들어 메타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잘 못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전엔 저장하고픈 글이 있으면 블로그를 만들어 거기다 옮겨놓곤 했는데 귀찮아서 못한지 너무 오래 됐다. 백 개는 옮겨야 할 건데.
먼저 설정에 들어가면 자신 계정의 페북 데이터 전부 몇기가를 한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파일로 받아놓고 작업해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온라인 페북에서 계속 스크롤하거나 검색해서 글을 찾으려 했다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김재섭이 뉴라이트 철학을 시연해보이겠다고 조선과 대한민국은 별개 국가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동상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일이 아니라 건국일이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제정해 광복절을 대체하자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우리가 조선과 단절된 존재라는 프레임을 밀면 자신들의 친일도 아무 문제가 아닌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병약한 조선을 합병한 거지 지금의 자신들의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 한국을 합병한 게 아니니까. 한국이 존재하기 전에 친일 앞잡이 좀 한 게 뭐가 문제냐, 그리고 그 친일행위가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 일본 편 드는 게 뭐 어떻냐는 거다.
웃기지만 그게 저들 논리 능력의 한계다. 한국의 정체성이 형성된 건 1897년 대한제국 선포 때고, 일본제국이 합병한 게 그 대한제국이다. 제헌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잇는다고 되어있고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1919년이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되어있다. 뉴라이트의 주장은 “그게 아니라 45년에 한국이 짠하고 갑자기 시작된 거면 우리가 욕 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현실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좀 더 야심차게 표현한 것 뿐이다. 김재섭 같은 사람들이 덥썩 무는 거고. 정상인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보니 애기 때부터 세뇌할 수 있는 리박스쿨이 필요한 거고.
—-
그것과 별개로 한반도 정치체들의 국호에 패턴이 있는 건 맞다.
고조선은 우리가 이성계의 조선朝鮮과 구분하기 위해 古를 붙여 고조선이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조선이라고 불렀다.
이후 고조선의 강역을 차지하는 고구려高句麗는 장수왕 때 국호를 고려高麗로 바꿨다.
200년의 발해/통일신라 남북국시대를 지나 금방 국호는 다시 고려가 된다. 궁예의 후고구려/고려/태봉을 물려받은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그 다음은 이성계가 국호를 다시 조선으로 바꿨고, 지금은 북한의 국호가 여전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조선 – 고려 – 고려 – 조선 – 조선/한국 패턴으로 왔다.
통일 논의에서 1960년대부터 북한이 주장하기 시작한 고려연방제 방안이 채택됐으면 다시 한 번 고려가 될 수도 있었다. 영문명이 Korea라 사실 우린 지금도 고려이긴 하다.
—-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좀 예외적이다. 근데 이것도 뉴라이트 주장처럼 45년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고 고조선과 삼국시대 사이에 마한진한변한馬韓辰韓弁韓 삼한 시절에서 따왔다. 1897년 대한제국 선포 때 고종이 한韓을 국가의 공식 상징으로 격상시키고 이후 신민회 독립협회 애국계몽운동에서 “한민족”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맞서야하는 상황에 19세기 말 전세계적 민족주의의 유행을 빌어 황제의 나라임을 선포하고 “大韓”이라는 아직 사용된 적 없는 나라 이름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장착, 혹은 옛 정체성을 재발굴했다.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한민족, 한반도, 한국, 한국인이 된 게 겨우 130년 정도 됐다는 뜻이다. 훈민정음/언문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도 1908년 주시경 선생 덕이니 대한제국의 새 정체성 캠페인의 영항을 받았다고 볼수 있다. 한국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조선인이나 고려인이어도 별로 생소할 게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럼 그 전에는 우리를 스스로 조선민족이라고 한 적이 있냐… 민족주의라는 게 근대의 발명이다보니 예전엔 꼭 “우리”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빠르게는 삼국시대 때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눠져 있음에도 셋을 한번에 부를 때는 삼한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려 때 기록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삼한일통” 같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민족으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사실 소중화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다보니 우리를 민족으로 묶어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
또 별개의 이야기지만 한국 민족주의/유사사학 계열에서 ‘한’이라는 단어에 애정이 굉장하기도 하다. 한글, 한강의 한, 튀르크/몽골계의 칸/한汗, 환인환웅의 桓, 한韓, 단군의 단檀, 배달倍達/밝달의 배 등이 다 같은 ‘밝다/크다/위대하다’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이게.. 내 기억으로 한국 측에서도 론스타 먹튀를 도운 놈들이 많았고, 제일 중요한 게 검찰이 계속 부실수사로 스티븐 리가 도망다니게 해줬던 케이스. 그리고 그 부실수사를 한 게 박영수 중수부장이고 그 밑에 대검 중수1과 부부장검사 윤석열과 그 똘마니 한동훈이었다.
바로 이 박영수-이복현-윤석열-한동훈 론스타 팀이 나중에 대장동 사업에도 개입된다. 같은 팀이 먼저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부실로 해서 그 PF 대출 자금을 남욱과 정영학이 대장동 사업비로 끌어다 쓸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 담보도 없이 무작정 허가해준 1100억원이 부산저축은행 비리에서 가장 큰 단일 사업이었는데 아예 수사 대상에서 빼줬다. 원래 회수하는 게 당연한 돈이었다. 김만배 등 대장동 업자들은 너무 고마워서 박영수를 50억원 클럽 멤버로 확실히 챙겨줬고 그래서 박영수는 감옥에 간다. 김만배는 윤석열 아버지 집을 사주기도 했다. 우연히.
대장동은 사업 초기부터 윤석열 팀이 개입돼 있었다. 그래서 왜 하필 지들이 더 구린 대장동으로 이재명을 공격하는 건지 난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아마 지들이 구린 곳을 먼저 상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한동훈이 론스타 상대 승소가 자기 덕이라고 하고 다니는 모양. 게다가 지들이 싼 똥인데 하필 윤석열이 대통령이고 한동훈이 법무장관일 때 패소해서 망신 당했던 사건. 그러고 바로 장관 그만두고 국힘으로 갔는데 뭔 지가 한 게 있다고. 아, 지가 찔리는 곳이니까 먼저 생색을 내는 게 최고라고 판단한 모양이구나.

사무라이로 태어난 주스토 타카야마 우콘(ジュスト高山右近)은 12살이던 1564년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다이묘로 성장한 타카야마는 여러 전투에 참전했으나 이후 임진왜란 5년 전인 1587년 히데요시가 기독교를 금지했을 때 신앙 포기를 거부하고 다이묘 지위와 영지를 포기했다.
27년 뒤인 1614년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기독교인들을 추방했을 때 예수회 선교사들과 함께 62세 나이에 필리핀 마닐라로 쫓겨났다. 거기서 환영받았으나 도착 44일만에 급환으로 죽었다. 필리핀에 묻힌 유일한 다이묘다.
기독교 박해에 저항해 모든 것을 포기한 점을 인정해 2017년에 프란시스 교황에 의해 시복돼서 복자(the Blessed)가 됐다. 이후 타카야마 관련 일정한 수의 기적이 검증되면 성인으로 추대 될 수 있다. 이미 검증 과정에 있는 것으로 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종 Servant of God’, ‘가경자 Venerable’, ‘복자 Blessed’, ‘성인 Saint’ 순서로 올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