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에 발사되어 인간이 만든 물건 중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가 있는 보이저 1호와 2호. 워낙 태양과…

77년에 발사되어 인간이 만든 물건 중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가 있는 보이저 1호와 2호. 워낙 태양과 먼 곳까지 가며 수십 년 이상 작동해야하는 기기다 보니 태양광이나 화학배터리로는 전원을 유지할 방법이 없어 플루토늄을 탑재하고 거기서 나오는 열로 발전을 해서 전원을 공급한다. 플루토늄의 반감기 때문에 이제 내후년이면 1호 2호 모두 사실상 수명을 다하지만 그래도 48년간 임무를 잘 수행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 없이 평화로운 항해를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몇차례 고장이 났지만 나사 기술자들이 천재적 능력으로 매번 복원했다. 이건 그때 그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도 있지만 애초 설계할 때부터 상상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최대한 자유도를 높여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호, 2호에 들어가는 필수 기능들은 거의 모두 백업을 가지고 있다. 추진로켓이 사방팔방을 향하도록 달려있어 방향을 바꾸는 게 가능한데, 2014년에 이게 고장나 경로수정이나 촬영을 위한 방향 수정 등이 불가능해지며 사실상 수명이 다 한거라는 평가가 있었다. 알고보니 나사는 8개의 백업 로켓을 추가로 붙여놨었고, 영하 270도의 우주 속에서 항해한지 44년만에 처음으로 가동해봤는데도 이게 완벽하게 작동했다. 추후 수리가 불가능하니 처음부터 대비에 대비에 대비를 해서 보낸 덕에 결국 놀라운 성과를 낼수 있었다. 중요한 일일 수록 과한 대비가 필수다. 중요한 정상회담전에는 몇달에 걸친 물밑작업과 준비가 필요하다.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중요한 소송사건에도 다섯번 여섯번 반복해서 검토하고 연습하고 대비해야한다. 윤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기득권 세력의 특징은, 특히 이명박 때부터, 박근혜, 윤을 거치며 점점 더 심화되는 중인데, 자신들이 모르는 분야를 굉장히 우습게 여긴다. 박근혜는 어릴 때 아빠가 맨날 술이나 마시고 여자들이랑 놀아도 나라가 멀쩡히 돌아가는 걸 봤기 때문인지 자기도 대통령 당선된 뒤에는 일을 안했다. 국정이라는 건 그냥 원래 저절로 돌아가는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흔히 정치에 처음 도전하는 유명 기업인들, 예를 들면 안철수나 문국현 같은 인물도 "정치 그까짓거 내가 그판에 들어가면 월등한 실력으로 다 싹 치워버린다"하며 도전한다. 회사 운영하듯 하면 된다는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다. 윤 정권에 이르러서는 이게 아예 국정기조가 됐다. 정치 뿐 아니라 재정, 금융, 인권, 외교 등 모든 분야에 투입된 검사들이 이 분야를 우습게 보고 도전하다 망치고 있다. 물론 윤 본인이 가장 심하다. 외교가 뭔지를 모르니 저런 뻘짓을 하고 다니면서도 뭐가 잘못된 건지를 모른다. 그런데도 자신감은 가득하다. TV토론? 王자가 있는데 뭐. 새만금? 대비 필요없이 그냥 그때그때 처리하면 되고. R&D 예산은 자기가 모르는 분야니 깎아도 되고. 핵무기 보유도 그냥 미국 대통령에게 아부하고 아메리칸 파이 좀 부르고 하면 될 걸로 생각했고. 달착륙 화성착륙도 그냥 하면 되는 걸로 생각하고 발표하고 예산은 깎았고. 엑스포도 외유하고 놀면서 사진 찍고 악수하고 그러면 되는 걸로 생각했고. 아마도 다가오는 특검도, 총선도 그렇게 임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사실상 마땅한 대책은 없이. 그래도 충만한 자신감으로. 우리로서는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