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 전쟁

애플이 정의하고 대중화시킨 현대적 스마트폰/모바일 시대 기기들의 특징은 컴퓨터에 비해 소비형이 됐다는 점이다. 컴퓨터로는 문서작업, 창작작업이 용이하고 모바일 기기로는 소비가 편하다. 데스크탑에서 모바일로 전환 과정에서 UI가 제대로 해결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스크탑에서 마우스를 사용하면 모든 작업의 가장 기본 단위는 클릭이다. 다양한 복잡한 작업도 단순하게 해체하면 드랙과 클릭일 뿐이다. 화면 어딘가 내가 원하는 정확한 좌표에 커서를 가져다 놓고 클릭한다.

모바일에서 화면을 만졌을 때 기본 설정은 클릭이 아니라 스크롤이다. 배경화면을 움직여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다. 클릭이 되려면 손가락을 떼야한다. 이게 스크롤인지 클릭인지 분석하는 작업을 거쳐야하고 따라서 화면조작은 정밀해지기 어렵다. 손가락 자체가 뭉툭하게 생겼고 화면을 누를 때 손가락이 화면을 가린다.

마우스 UI도 모바일 UI도 애플이 유행시켰다. 애플은 이 모바일 UI를 데스크탑 UI 만큼 높은 생산성을 내게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모바일 시대에서만 나타나는 틱톡 등의 생산 문화도 도구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드니 서비스가 자동 생성을 많이 해준다. 정확한 편집의 부담을 플랫폼이 흡수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모바일 시대 창작의 핵심은 속도와 즉석 공유다. 결국 폰은 아직도 소비용 기기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한동안은 음성인식 입력 등이 인기였지만 이제 더 나은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AI다.

사실 모바일의 단순한 UI에서 정확한 클릭 구현이 힘들어 생산성을 올리기 힘들다면 더 단순한 UI로 가는 방법이 있다. 입력의 정밀도를 높히는 게 아니라 정밀함의 필요를 줄이는 거다. AI가 사용자의 의도를 더 빨리 파악해주면 된다.

애플이 AI 도입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도 이거라고 본다. AI 비서 기능을 더하는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다시 패러다임이 바뀌려 하는 시점에 애플이 해야하는 건 아이폰 사용을 다시 한 번 더 편하거나 더 생산적이 되도록하는 혁신이다. 근데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미세한 조종까지 하기에는 AI 성능이 아직 거기까지 오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주목하고 있는 건 마우스와 폰을 이은 다음 UI 혁명도 애플이 주도할 것이냐 메타의 스마트글래스, 혹은 OpenAI가 준비하는 또 다른 형태의 기기가 될 것이냐다. 사용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 다음 애플이 될 수 있다. 미세한 편집이 가능할 정도로 똑똑한 AI를 탑재할 수 있으면 모바일이 끝내 가져오지 못했던 비즈니스/생산성 시장도 다 잡는 게 가능하다. 몇 년 뒤 미래를 훔쳐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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