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주권이라는 개념은 국가간 대립에서도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활용되지만, 국가 내부 권력투쟁에서도 활용된다. 미국의 주정부 vs 연방정부 권한 논란이 그 예다. 주로 미국의 공화당 등 보수가 주 정부의 독립적 권한을 주장하고 민주당 쪽이 연방정부의 통제를 주장한다. 이 논란이 지속되며 미국은 고속철 같은 대규모 사업은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 연방정부가 서로 다른 주 몇개를 지나가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정치력이 없다. 개념적으로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하건 현실에서는 주정부 권한을 지지하는 사람들 덕에 미국이 도태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연방정부라는 독재에 맞서 주정부들이 목소리를 내고 권한을 키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그럼 그 주정부의 독재에 맞서 시정부와 카운티정부들도 목소리를 내는 게 맞지 않냐고 물어보면 무시한다. 그냥 모든 권한은 주정부가 갖는게 좋다고 한다. 내부적으로도 일관적인 논리가 없다.
현실은 지금 미국이 변종 봉건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태어나기 전 주들이 먼저 태어났으므로 주가 우선한다는 주장이다. 주정부는 시와 카운티를 만들고 없앨 권한이 있지만 시들은 주를 형성할 권한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각 주마다 인구와 상관없이 2석을 갖는 상원이 미국 국가 기관들 중 가장 막강하다. 인구와 관계없이 델라웨어나 로드아일랜드처럼 눈꼽만한 주도 캘리포니아처럼 수천만명 인구를 가진 초거대 주와 똑같이 2석을 갖는다.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에서 나온다. 하늘이 무너져도, 주 인구가 다 사라져도, 나라가 무너져도 주 정부를 장악한 자신들의 권한은 없앨 수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독립이전부터 지주였고 귀족이었던 자신들의 권력을 천년만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래서 난 “자주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항상 의심스럽게 본다. ‘민족주의’처럼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럴듯하게 들려도 큰 그림에서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개념이다. 그리고 주로 사람들을 홀려 스스로의 이해를 배반하게 만드는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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