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유죄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고 설사 누가봐도 유죄인 사람도 합법적 절차를 걸쳐 그 죄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처벌하는 게 모든 민주국가의 원칙이다. 아무리 나쁜놈이라고 밥 안 주고 때려가며, 피의사실공표하며 망신주며 수사해도 되는 게 아니다. 아직 판결을 받지 않은 사람을 수사기관이 유죄로 단정하고 범죄자로 대우할 권리를 허용하면 그 수사기관은 모든 용의자를 범죄자로 대우할 권리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명을 쓰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제대로 변론할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거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변호사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돈이 없으면 국선이라도 붙여주는 게 변호사가 없는 사람을 합당하게 재판해서 처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검객이 평생의 라이벌을 찾아가 정식으로 대결해서 이기면 영광의 승리이지만 몰래 뒤에서 찌르면 그냥 살인이다.
변호사가 흉악범이나 폐륜범을 변호한다고 욕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이거다. 그 흉악범도 분명 인권이 있고, 그냥 사람취급하지 않고 의심되는 모든 죄로 기소해서 감옥에 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세상 모두가 “저 사람이 한짓이 당연하지”라고 확신하더라도 결국 진범이 나온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흉악범이 밉다고 모든 죄를 씌우면 진짜 흉악범이 자유롭게 세상을 거니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박준영 “재심 전문” 변호사가 김학의 관련 강하게 무죄라고 주장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근데 문제는 이분은 김학의 사건 관련 선임계를 낸 변호사가 아니다. 오히려 김학의 건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멤버로 조사하다가 중간에 나간 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김학의의 법적권리에 대해서만 줄기차게 주장한 걸로 보인다.
내가 본건 주로 페북에서 였는데, 사실 그 훨씬 전 재심 전문가로 최고 상한가이던 시절에도 검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굉장한 분이었다. 검찰이 엉터리로 만들어낸 혐의와 기소와 판결을 조사하고 공격해서 뒤집는 게 전문인 분이 거의 검찰 지상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가져서 처음부터 너무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관심있게 보는 중이다.
접대를 받은 건 확실해 보이지만 특수강간으로 기소할 증거가 불충분하고 공소시효가 얼마 안남은 상황이라 어차피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기억한다.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김학의의 변호사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고 또 그게 의무다. 근데 이분의 경우는 그 뒤에 검수완박 반대에 조중동 국힘 윤석열과 함께했다. 어떤 특별히 새로운 주장이 있었던 건 아니고 졸속이라는 비난이었다. 검찰이 얼마나 중요한 조직인데 이렇게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수사권을 박탈하냐는 거다.
정리해보자.
검찰의 기소권 독점과 수사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 수십년이다. 토론과 연구도 많았지만 또 해결책은 그냥 수사권과 기소권을 박탈하면 자연스럽게 경찰과 국수본 등이 수사하고 기소하고 검찰은 기소유지를 하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는 결론도 사실상 이미 수년전에 나온 상태다. 갑자기 나온 아이디어도 아니고 갑자기 만든 대책도 아니었다.
갑자기 나온 건 윤석열총장 지휘하 검찰의 쿠데타에 가까운 전횡이었다.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바로 오늘날의 비극적 상황이 올 게 뻔하다는 급박한 상황전개가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런 전후 상황을 모두 무시한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전체적 죄와 책임을 보기보다 절차적 문제나 혹은 혐의 별 다른 변호를 하기 위해 사안을 단편적으로 쪼개서 봐야하는 건 당연하지만 박준영 변호사는 법정에서 변론을 한 게 아니라 페북과 언론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그렇게 앞뒤 자르기 기술을 사용하려 했다.
김학의의 경우도 대중이 정말 분노했던 건 검찰출신이 그런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난교 성접대를 받고 현장에 동원된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해도 자기들이 보기엔 김학의가 아니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검찰에 대한 분노였다. 그 모든 걸 앞뒤 다 자르고 증거불충분과 공소시효만 얘기한 거다.
그로 인해 그가 일반 대중에게서 받던 존경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절반으로 줄어든 건 전혀 억울한 상황이 아니다. 이분의 정치적 성향이나 정치적 야망이나 속마음은 내가 알 수 없으니 각자 직접 판단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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