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흔하지만, 정부 수반으로서 president이라는 명칭은 역시 1789년 미국에서…

지금은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흔하지만, 정부 수반으로서 president이라는 명칭은 역시 1789년 미국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처음 사용됐습니다. 그 전에는 15세기부터 대학교 총장이나 기관장, 이사장들에게 사용 됐지만 보통은 상징적 직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국에서도 대륙회의(독립전쟁 직후까지의 임시정부) 의장의 직위가 president 였으니까 미국에는 조지 워싱턴 이전에 14명의 대통령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번역하자면 의장이 더 정확하지만.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을 국가수반으로 뽑는 데에는 의견일치를 봤는데, 뉴욕시에서 취임식을 하던 전날까지도 호칭을 뭘로 할 것인지로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슈는 이제 막 영국 왕과 처절한 전쟁을 해서 독립했는데, 미국이라는 국가가 다시 왕정제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 주로 상징적 직위로 쓰였던 힘없어 보이는 명칭인 president를 선택한 거였습니다. 물론 사람 이름도 그렇듯 이름의 어감은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완전히 바뀝니다. 정희도 보통은 여자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데 박정희는 그런 느낌이 없지요. 결국 대통령이라는 칭호는 그 어떤 왕보다 강력한 칭호가 됐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국부이자 군대의 총사령관이었고 아직 국가체계가 없는 신생국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임무/책임/권한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선거에 출마한 적도 없습니다. 각 주의 선거인단이 일종에 체육관 선거로 4년 임기로 두번 뽑았습니다. 사실 그건 그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민이 동참하는 선거를 하지만 그건 대통령을 뽑는게 아니라 대통령 간접선거에서 주를 대표할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입니다.

4년 임기를 마치고 그만두려고 했으나 워낙 신생국가에 민주주의라는 실험적 체계를 채택한지라 너무 불안정한 정부를 두고 떠나면 정말 망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4년 임기를 더 했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고 이제 괜찮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은 다들 궁금해했습니다. 과연 워싱턴 대통령이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영구집권 할 것인가… 대통령이 4년 임기라는 것도, 단임제인지 중임제인지 연임제인지 아무런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 워싱턴이 하는 게 법이 되고 전통이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대통령을 8년 해봤으나 아무래도 불안정한 상황이니 그냥 더 보편적이던 왕정제로 가고 조지 1세가 되는 게 낫겠다는 전망도 있던 상황입니다.

워싱턴은 미련없이 모든 걸 버리고 버지니아에 자기 농장으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농사만 지었습니다. 바로 그 결정 덕에 미국은 지금까지 대통령은 4년 임기에 두 번까지 연임할 수 있다는 전통을 지키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걸 깬 사람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입니다.

1932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36년에 재선에 성공했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40년에 다시 출마해서 3선에 성공하더니, 아예 44년에 4선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때까지 모든 대통령은 재선 이상 하지 않는 게 전통이자 불문율이었지만 그냥 조지 워싱턴의 결정을 존중해서 모두가 따랐던 거지 헌법에서 규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4년에 4선에 성공하고 다음 해인 45년 나치독일이 항복하기 바로 전달에 사망했으니 망정이지 건강만 괜찮았다면 계속 출마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의회는 결국 51년에 수정헌법 22조항으로 대통령 임기를 두 번으로 제한했습니다.

현실정치인 중에 문재인 대통령의 롤모델이 프랭클린 루즈벨트입니다. 미국에 복지체계 개념을 처음 도입한 대통령이자 대공황에서 미국경제를 건저냈고,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을 굴복시킨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또 협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말을 하겠지만, 루즈벨트는 협치 같은 거 하던 사람 아닙니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던 정책들을 추진했고, 남의 시선 같은 거 신경 안 썼습니다. 국부 워싱턴이 만든 전통이자 백 년 넘게 지켜온 규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무려 4선을 했을 정도니까…

부디 문재인 대통령이 루즈벨트의 업적만 보지 않고 그 과정도 잘 배워서 과감한 선택에 주저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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