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칼럼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354.ht…

이진순 칼럼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0354.html 혹시 이 칼럼에서 공허함을 느끼신다면 제가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권교체 전까지 수백만의 시민이 수개월 간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했습니다. 정권교체 후 그 시민들은 더 이상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촛불시위에 모이지 않습니다. 그 수백만의 시민들은 그저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만 한 친문세력이었을까요? 정권교체 전 세월호 진상규명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박근혜와 국민의힘 세력이었습니다. 박근혜는 노골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적으로 대했고 기무사는 유가족을 사찰했으며, 그 세력은 자신들이 장악한 언론을 동원해 유가족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무시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는 종북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진상규명 방해 세력의 우두머리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절반인 국민의힘 세력이 여전히 진상조사위원회 추천권을 활용해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걸 다 함께 봐온 시민들은 진상규명 방해 세력이 문재인 정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지금까지 나온 진상과 다른,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상상을 초월하는 사실을 밝혀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 테러방지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없는 게 나은, 정부에 너무 큰 힘을 주는 법안입니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입니다. 이제 2020년에 드디어 법사위원장 자리를 가져왔기 때문에 폐지할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해서 전 세계적으로 140만여명이 사망했고, 신천지, 태극기부대, 전광훈 등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바이러스로 나라를 무너뜨리겠다며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이 시점에는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더 강한 공권력 행사를 위한 법안이 제정돼도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김용균법은 통과됐지만 역시 재계, 언론, 야당의 힘으로 누더기가 된 상태였습니다. 사망재해를 낸 원청사업장 형사처벌 하한선이 빠졌고, 정말 위험한 작업장인 승강장 정비, 발전소 등의 작업이 도급금지 범위에서 빠졌습니다. 이걸 뚝딱 고쳐서 이상적인 법안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민주당과 대통령을 능력 없다고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하려면 다수 의석을 동원해 무시하거나 찍어눌러야 하는 게 바로 재계, 언론, 야당입니다. 분명히 비리를 저지르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이제 노골적으로 정치권력이 되고자 나선 검찰을 법에 나온 대로 감찰만 하려고 해도 공권력 남용이라며 들고 일어나는 건 재계, 언론, 야당뿐만 아니라 비문/반문 진보세력도 포함됩니다. —- 개혁은 전임 민주당 대통령 두 명이 보수세력에 사실상 패배하고 목숨을 잃는 걸 보고서도 다시 그 불구덩이로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이나 국회 다수석을 얻은 민주당이 철권을 휘둘러 하는 게 아닐 겁니다. 한다면 민주적 절차와 사회합의를 무시하는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으로 바로 퇴진 당하겠지요. 시간을 가지고 반대세력을 설득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이뤄 반대세력을 압박하는 게 민주주의의 정석일 거고, 전횡을 일삼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기까지도 지켜주는 문재인 대통령 스타일로 봤을 때 남은 임기 기간에도 같은 노력이 계속 될 걸로 봅니다. 반대세력은 사실관계를 따지거나 토론을 통해 합의를 볼 생각이 없으니 큰 진전은 없을 겁니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으로 일을 해결해주길 바라면서도 민주적 권력분립도 이뤄지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순적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줄 대통령이란 앞으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절차를 무시하더라도 철퇴를 휘둘러 빠른 개혁을 이루거나, 속도를 내지 못하더라도 절차를 지켜 민주주의의 토대를 강화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이게 현실이지만, 제왕적 권력을 사용하면 독재자라고 욕하면 되고, 민주적 절차를 지키면 무능하거나 개혁 의지가 없다고 욕하면 되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 현실이 꽃놀이패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각일 겁니다. 다른 예를 들어 원전폐지 공약 철회와 서울-부산 시장 불출마 번복 결정을 직접 하지 않고 시민과 당원에게 맡겨 민주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폐지해도 욕할 수 있고 공약철회해도 욕할 수 있는 기회였고, 불출마해도 출마해도 민주당 공략의 기회가 될 거라고 기대했던 분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이 터지겠습니까. 정치가, 그리고 정치비판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자신의 입장이 상대세력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 무력해진다면 다시 촛불을 들자고 선동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재고하는 게 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