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vs 애플 – 2 음악 영화 출판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비틀즈가 중간 상인을 빼고 자신들이 직접…
애플 vs 애플 – 2 음악 영화 출판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비틀즈가 중간 상인을 빼고 자신들이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겠다 마음 먹은 건 분명 똑똑한 결정이었고 이후 많은 음악인들에게 교훈을 줬다. 물론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다 성공하진 못했고 특히 비틀즈가 해체되며 자회사들은 애플 레코드 빼고 거의 다 닫았다. 1. 애플 전자 원래 비틀즈가 알고 지내던 친구 중에 발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제품 개발을 맡겼다. 진짜 가전이나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비틀즈 해체 전까지 하나도 성공시킨 물건이 없었다. 죄다 독특함만 추구해서 실용성이 없었다 한다. 2. 애플 필름 비틀즈는 새 앨범을 낼 때 영화를 제작해 개봉하는 시도를 했었다. 매직 미스테리 투어, 옐로 서브머린 등 영화들이 제작됐고 몇몇 비틀즈와 무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해체 뒤에도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제작사를 세워 몬티 파이선의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2010년에는 127시간을 제작하기도 했다. 3. 애플 퍼블리싱 저작권 관리 회사다. 비틀즈 음악의 저작권은 당시 다른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애플 퍼블리싱에서는 비틀즈가 새로 발굴한 다른 음악가들을 주로 관리했다. 나중에 비틀즈 노래 저작권들도 옮겨오려 노력했다. 나중엔 저작권이 많았던 비틀즈 멤버들이 대부분 제각기 저작권 관리회사를 세운다. 서적 발행도 제한적으로 몇번 했다. 4. 애플 레코드 역시 자회사 중 레코드 회사가 가장 컸고 활발했다. 비틀즈 자신들의 음반은 사실 EMI와 계약이 있어서 공동 발매를 주로했고, 애플 레코드의 진짜 힘은 소속 음악가들이 진짜로 훌륭했다는 거였다. 인도 시타르 음악가 라비 샹카르, 배드핑거, 빌리 프레스튼 등, 비틀즈 급의 상업적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애플 레코드 만의 특성과 색을 만드는데는 완벽히 성공했다. 지금도 정상 운영 중이다. 5. 애플 유통 런던에 애플 부티크라는 가게를 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물건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가게”가 모토였고 이런 저런 물건을 다룰려 했지만 주로 패션 쪽이었다. 의류와 장신구. 개업하는 날 에릭 크랩튼 등이 와서 홍보해줬다. 돈을 너무 빠르게 허비해서 돈 많은 비틀즈로서도 감당이 안돼 6개월 정도 운영하고 폐업하며 모든 물건을 공짜로 풀었다. 6. 애플 스튜디오 녹음실이었다. 비틀즈는 애비로드 등 다양한 녹음실을 썼지만 애플 레코드 소속 음악인들은 거의 애플 스튜디오로 보내졌다. 75년에 폐업했다. —— 음악인들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한게 비틀즈가 처음은 아니었으나 이후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줬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하나의 기업인것도 비틀즈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애플 컴퓨터가 시작한 건 애플 코어의 자회사들이 대부분 폐업된 후였지만 애플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갖고 있었으니 초반에는 비틀즈가 애플 컴퓨터를 쥐고 흔들었다고 봐도 된다. 사용을 허락해주는 수준으로. 2007년에 최종적으로 합의할 때는 애플이 비틀즈에게 무려 5억 달러를 주고 애플 이름의 모든 권리를 넘겨받았다. 비틀즈가 활동 당시 번 돈이 약 2-3억 달러였다. 물론 지금 물가로 생각하면 2-30억 달러가 되지만, 명목상으로는 애플에게서 받은 돈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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