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그 땅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
이라크는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그 땅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이른바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최초의 도시 국가들—수메르, 아카드, 바빌론, 아시리아—가 탄생한 자리이며, 이후에도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 시기 이슬람 문명의 수도로서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지식과 문화, 정치의 중심이었다. 인류 문명의 기원이자 이슬람 황금기의 심장이었던 이 지역이 오늘날처럼 혼란과 분열의 상징이 된 것은 단지 내부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유럽 열강 특히 영국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다. 하나는 오스만의 부활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스만이 지배하던 주요 지역들, 특히 바그다드 일대를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 다시 세우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영국은 세 개의 서로 다른 민족과 종파가 혼재한 지역—쿠르드족이 주로 사는 북부 모술, 수니 아랍이 중심인 바그다드, 시아파 아랍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부 바스라—를 억지로 하나의 나라로 묶어 '이라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중동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코 스스로 통합되거나 강해질 수 없는 구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조치였다. 오늘날 이라크 중심으로 중동을 민족별로 지도로 그려보면 이 전략의 정교함이 보인다. 북쪽에는 쿠르드족이, 남쪽에는 시아파 아랍이, 중앙에는 수니파 아랍이, 동쪽 국경에는 이란계 부족이, 서쪽 국경에는 수니파 부족이 있다. 여기에 종교와 종파가 교차하고, 석유 자원은 주로 쿠르드 지역과 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바그다드 중심의 중앙정부는 늘 자원과 종족 통합의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라크가 '하나의 국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가 존속의 핵심인 물 자원과 해상 접근권까지 구조적으로 제한해 놓은 점도 중요하다.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답게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라는 거대한 강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모두 발원지가 이라크 외부에 있다.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 이란이 상류를 장악하고 있으며, 댐과 수로 개발을 통해 이라크 하류의 수량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유프라테스 수위가 줄어들면 농업, 전력, 식수는 물론 정치적 안정성까지 위협받는다. 국토 내에 강이 있어도 그 통제권을 외부에 넘겨준 상태에서, 이라크는 물 주권이 없는 나라나 다름없다. 또한 바다에 면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실질적으로 내륙국가(landlocked)처럼 설계되어 있다. 이라크의 해양 관문은 단 하나, 남쪽 끝의 좁은 항구 도시 움 카스르(Umm Qasr)뿐이다. 쿠웨이트와 이란 사이에 끼어있는 그 좁은 출구는 전략적으로 취약하고 확장성도 없다. 한때 바그다드가 바다를 향해 직접 소통하던 문명의 중심이었던 것에 비하면, 현재의 이라크는 스스로의 수출입 경로조차 확보하지 못한 구조다. 유럽 식민 전략은 이라크를 물길과 바닷길 모두에서 고립시켜, 제국이 다시 태어날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이런 식의 전략은 이라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은 중동과 아시아 전역에서 잠재적 대국이 될 수 있는 지역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봉쇄해왔다. 튀르키예는 오스만의 후예로서 유럽의 동방 국경을 위협했던 존재였고, 지금도 나토 내부에서 불편한 변수로 취급된다. 이란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로서 지정학적 허브 역할을 해왔기에, 항상 경제 제재와 국제 고립의 대상이 된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유라시아를 연결하려 하지만, 서방은 홍콩, 위구르, 대만 등을 지렛대 삼아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초대국이었기에, 냉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견제를 받고 있다. 이 모든 지역의 공통점은, 과거 제국의 심장이었고 지금도 그 잔재를 품고 있으며, 따라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묻지마 전폭지원하는 이유도 중동 견제 목적이 매우 크다. 이라크는 이 제국 봉쇄 전략 중 가장 성공적이고 최악에 해당된다. 바그다드는 인류 문명의 원점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추였기에, 다시는 그 중심이 되지 못하도록 세계질서 속에서 가장 철저하게 분열되고 고립된 구조로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는 이라크의 혼란은 실패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정교하게 실패하도록 설계된 국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라크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 더 고생하게 되어있다. (사진은 8세기 바그다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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