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정복자들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새로운 법체계와 행정시…

제국과 정복자들은 단순한 영토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새로운 법체계와 행정시스템을 정복지에 이식했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얻은 땅을 오래 지배하려면 칼보다 체계가 필요했고, 법은 그 핵심 도구였다.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에 프랑스 민법전, 즉 나폴레옹 법전을 퍼뜨렸다. 이 법전은 봉건적 특권을 철폐하고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 법 앞의 평등 같은 근대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에도 그가 세운 법과 제도는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동유럽 곳곳에 남았다. 무력으로 만든 제국은 무너졌지만 법으로 만든 질서는 남아 근대 유럽의 기초가 되었다. 징기스칸도 다르지 않다. 그는 단지 유목민의 무자비한 정복자가 아니라 ’야사(Yassa)’라는 공통 법체계를 통해 동서 유라시아의 광대한 영역에 통일된 질서를 부여했다. 야사는 군율, 외교, 도로, 조세, 종교 자유까지 다뤘고, 이는 다양한 민족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초국가적 헌법이었다. 몽골 제국은 야사를 통해 수많은 부족을 하나의 제국 시스템에 통합했다. 알렉산더 대왕 역시 단순히 도시를 세운 것이 아니라, 헬레니즘 문화를 확산시키며 기존의 법과 제도를 통합·조율하는 방식으로 제국을 안정시켰다. 그가 정복한 지역에서는 그리스와 지역 법률이 절충되며 새로운 복합 법질서가 형성되었고, 이는 후에 로마제국 법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정복자의 성공은 무력의 순간이 아니라, 그 뒤에 남기는 제도화된 질서에 달려 있다. 혼란을 끝내고 예측 가능한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법은 제국의 언어다. 결국 제국이 남긴 가장 강력한 유산은 국경이 아니라 규칙이다. 이 점에서 한국이 곧 마주할 개헌 과제는 단지 국내 정치의 일정이 아니다. 개헌은 대한민국 시스템 전반을 재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국가적 작업이다. 중진국을 넘어 글로벌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한국에게, 시대에 맞는 헌정 구조와 통치 시스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더 나아가,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파장을 줄 수 있는 움직임이다. 세계는 점점 블록화되고 있고, 각 지역은 중심국을 기준으로 새로운 질서를 짜고 있다.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외교 구조는 한국이 어떤 국가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개헌은 한 나라의 제도 정비를 넘어, 아시아 질서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 개헌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단지 과거를 고치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도약이 될 것이다. 개헌은 과제가 아니라, 미래로 가는 길을 그리는, 사실 굉장히 신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