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동의 전통적 맹주들—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동의 전통적 맹주들—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간의 경쟁과 알력은 이 전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들 모두 표면적으로는 이란을 경계하며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는 '친미 진영'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중동 주도권을 놓고 뿌리 깊은 불신과 대립이 이어져 왔다. 특히 카타르와 사우디·UAE 사이의 갈등은 이란 위기에서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17년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가 단행한 카타르 단교는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니라, 체제 성격과 외교 노선을 둘러싼 정면 충돌이었다. 사우디와 UAE는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 하마스, 이란, 터키와 연계하며 걸프 보수질서를 위협한다고 판단했고, 카타르를 고립시키기 위해 국경 봉쇄와 제재, 공중 통제 등 전면 압박에 나섰다. 그러나 카타르는 터키와 이란의 즉각적인 지원을 받아 체제를 지켜냈고, 이후 자신을 ‘중재자’, ‘중동의 스위스’로 포지셔닝하며 외교 자율성을 오히려 넓혀갔다. 2021년 알울라 회담을 통해 형식적으로 관계는 회복됐지만, 구조적 불신과 경쟁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 갈등은 단지 외교적 긴장에 그치지 않았다. 정보공작, 사이버전, 정치망명자 활용, 언론을 통한 상호 이미지 타격 등 다양한 형태의 사보타주가 실시간으로 벌어져 왔다. UAE가 카타르 내 쿠데타 시도에 연루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으며, 카타르는 알자지라를 통해 사우디 왕실 내부의 분열과 실정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맞섰다. 이들 왕가 간의 경쟁은 단순한 체면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정통성과 생존 기반을 겨냥한 심리전이자 권력 투쟁에 가깝다. 이 정도의 적대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이란이라는 외부 위기가 발생하면 겉으론 단일한 대오처럼 보이더라도 내부에선 중심 무대를 차지하기 위한 주도권 경쟁이 불붙게 마련이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는 여기에 더해 오랜 종파 경쟁이라는 역사적 요소까지 더해진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이란은 시아파 세계의 혁명 국가로서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양국은 예멘, 레바논, 시리아, 바레인 등지에서 대리전을 벌여왔으며, 외교 정상화 이후에도 상호 신뢰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이란이 핵 위기와 미국과의 충돌 속에서 '이슬람 저항의 상징' 이미지를 다시 획득하게 되면, 사우디는 종파적 권위와 정치적 정통성 측면에서 모두 위협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종파적 경쟁은 종종 종교적 압박 조치로 이어진다. 사우디가 무함마드의 생가나 그 가족·동료들의 유적을 보존하기는커녕 철거하거나 개발해온 것도 단지 도시 계획이나 안보 목적 때문이 아니다. 이는 와하비즘이라는 국교 이념의 교리적 방침과 맞닿아 있다. 와하비즘은 무덤과 성지 숭배를 우상숭배로 간주하며, 경전 중심의 '순수 이슬람' 복원을 강조한다. 특히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 사위 알리, 손자 후세인 등은 시아파에서 성스러운 인물로 여겨지는데, 이들의 흔적을 사우디 내에서 지우는 행위는 시아파 종교 권위의 상징 공간을 구조적으로 봉쇄하는 조치다. 이 또한 사우디가 자신들의 종교 해석 독점권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국가들 간의 알력은 이란과의 갈등이 격화될수록 더욱 민감하게 작동한다. 사우디와 UAE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이란 견제에 필요한 안보 인프라를 공유하지만, 동시에 직접적 전면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이라는 국내 개혁 프로젝트를 위해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UAE는 이란과의 실무적 접촉을 유지하며 양면 전략을 펼친다. 반면 카타르는 이란과의 관계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유지하며, 하마스와 탈레반 등 비국가 행위자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함으로써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카타르·UAE·이란 모두 이 지역의 외교와 위기 대응에 매우 노련한 국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수십 년간 미국·러시아·중국·이스라엘·터키 등 외부 열강과, 시아파-수니파·민족주의-이슬람주의라는 내부 균열 속에서 살아남으며 자신들의 공간을 키워왔다. 정권 교체 위기, 제재, 외교적 고립, 군사적 포위 등을 버텨온 이 국가들은 단순한 중간국이 아니라, 능동적 조정자이자 전략적 플레이어다. 카타르는 알자지라를 통한 여론 형성, 세계 최대 규모의 LNG 공급망, 복수의 외교 채널을 무기로 미국·이란·하마스·탈레반과 모두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로 기능해왔다. UAE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이란과도 선을 놓지 않으며, 정보·보안 역량을 활용해 안보 균형을 맞춘다. 이란은 수십 년간 제재 하에서도 시리아·이라크·레바논·예멘을 통해 자국의 안보를 방어선 바깥에서 구축하는 전방위 전략을 유지해온 맹주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란-미국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 사우디·UAE는 반이란 기조를 유지하되 확전에는 선을 긋고, 카타르는 외교적 중재와 영향력 확대의 기회를 탐색할 것이다. 이 갈등은 겉으론 단일 전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걸프 내부의 주도권 경쟁과 종파적 균열이 복잡하게 얽힌 다층 전선이다. 이란은 이 틈을 인지하고 개별 협상, 시간벌기, 국지전 확대 등으로 대응해 갈 것이다. 결국 중동 질서는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역사와 전략이 교차하는 복잡한 무대다. 이 중 누구도 쉽게 이득을 포기하지 않으며, 결정적 국면은 언제나 그 틈 사이에서 벌어진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미사일보다도, 그 미사일을 쏘지 않고도 판을 바꾸는 자들의 움직임이다. 이란을 둘러싼 전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작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