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봄, 소련 남부 스텝지대. 트랙터는 아직 눈이 덜 녹은 황무지를 갈아엎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였…
1950년 봄, 소련 남부 스텝지대. 트랙터는 아직 눈이 덜 녹은 황무지를 갈아엎고 있었다. 기온은 영하였고, 땅은 질척였고, 드넓은 벌판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명령이 내려왔으니 심어야 했다. "여기는 이제 곡창지대다." 알렉세이는 군에서 제대한 지 두 달도 안 된 청년이었다. 처음엔 고향 근처에 공장에서 일하길 바랐지만, 대신 중앙계획위원회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미래의 삼림지대’ 개간작업으로 배치되었다. 그가 맡은 일은 참나무 묘목 2천 그루를 줄 맞춰 심는 것이었다. “왜 나무를 여기다 심어요?” 알렉세이가 묻자, 감독관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여기서 바람을 막으면 비가 오고, 비가 오면 밀이 자란다고 했지.” 그 말대로라면, 알렉세이는 지금 바람을 막는 중이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심은 나무는 다음날 절반이 말라 죽었다. 3주 뒤엔 모래폭풍이 나서 남은 나무도 묻혔다. 여름엔 비가 오지 않았고, 밀은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이렇게 적혔다: “자연개조 대계획 1단계, 성공적으로 진행 중.” 가을이 오자, 알렉세이는 같은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었다. 그 옆에선 또 다른 팀이 대수로를 파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선 초원에 수박을 심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걸. 하지만 모두 입을 다물었다. 왜냐면, 실패를 말하는 자는 자연이 아니라 체제를 거역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울, 스탈린의 연설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자연은 우리를 거스르지 못한다. 이제 자연은 사회주의를 따를 것이다.” 눈보라 속에서 알렉세이는 얼어붙은 손으로 또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건 나무가 아니라 체제에 대한 복종을 심는 일이었다. —- 자연개조 대계획(Great Plan for the Transformation of Nature, Сталинский план преобразования природы)은 1948년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추진된 초대형 국가 프로젝트로, 초원에 방풍림을 조성하고 강우량을 늘리며 불모지를 곡창지대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시도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질적 기후 데이터나 생태학적 고려 없이 중앙의 낙관적 가설과 정치적 의지만으로 강행되었다. 그 결과 상당수 사업이 실패로 끝났으며, 일부 지역은 오히려 생태계 파괴와 토양 황폐화를 겪었다. 이는 자연을 체제의 의지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소련식 맹신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이런 태도는 자연개조 대계획의 실패 이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소련 지도부는 여전히 자연을 체제의 의지에 맞게 재편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결과 훨씬 더 큰 규모의 파괴적인 실험들이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내륙호였던 아랄해는 중앙아시아 면화 재배를 위한 농업용수 확보 명분 아래 강물의 흐름을 돌려 완전히 말라버렸고, 그 자리에 독성 소금먼지가 날리는 거대한 사막이 생겨났다. 여기에 더해 시베리아의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같은 대하(大河)를 남쪽으로 돌려 사막을 농지로 바꾸겠다는 ‘역행 수로 계획’까지 추진되었는데, 이 역시 기후 시스템과 생태계의 균형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다가 국제적 반발과 내부 과학자들의 경고로 간신히 중단되었다. 이는 과학보다 이념이 앞선 사고가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규모를 키워가며 대륙 규모의 환경 재앙을 불러온 대표적 사례다. 마오쩌둥이 해충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참새를 전국적으로 몰살시켰다가 곤충 폭증과 기근을 초래했던 것처럼, 소련도 자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끝에 자신들의 생존 기반부터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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