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조선을 침략했던 초기에는 물론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기존 기득권층의 매국을 통해 군사적 침략 없이 쉽게…
일제가 조선을 침략했던 초기에는 물론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기존 기득권층의 매국을 통해 군사적 침략 없이 쉽게 나라를 접수했다. 2025년 대한민국이 북한이나 일본을 적대적 합병하는데 전쟁 없이 외교와 첩보 작전, 그리고 현 지배층을 매수해서 해결했다고 상상해보자. 엄청난 위업이다. 우리가 피해자 입장이어서 그렇지 남의 일이었으면 연구하고 배워야 할 일이다. 아니, 어차피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우리도 언제 누구와 분쟁이 있을지 모르고, 그때가 되면 비용과 생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무혈 승리를 추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기존 지배계급을 매수해 조선을 접수하긴 했는데,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을 통치하려고 보니 그 지배계급은 이미 매국노로 찍혀서 통치에 문제가 너무 많은 거다. 일제는 다른 통치 방법, 새로운 현지 조력자들이 필요했다. 따라서 일제는 충성도 높은 식민 협력자를 길러내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제도를 설계했다. 그 핵심은 세 가지 방향으로 압축된다: 상훈과 포상, 교육과 인재 등용, 제도화된 기회 제공이다. 첫째, 총독부 표창과 훈장 제도다. 항일운동을 탄압하거나 징세·징용에 적극 협력한 이들에게는 ‘훈장’과 ‘표창장’을 내리며 지역 유지로 만들어 주었다. 이는 명확한 보상 체계였고, 조선인 사회에 "협조하면 출세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둘째, 보통학교와 사범학교, 일본 유학 제도를 활용한 친일 엘리트 육성이다. 초기에는 조선인에게 일본어 교육을 시키고, 일부에게는 사범학교나 도쿄 유학 기회를 주며 충성심을 시험했다. 이 중 충성도 높은 자는 교사나 면서기, 후에는 판사, 검사 등으로 등용되었다. 일종의 조선판 '정치 고시' 루트다. 셋째, 면장·이장 임명과 동리 구조 해체를 통한 기회 부여다. 면 체제를 통해 지역마다 면장을 임명하는데, 이 직은 일본이 직접 또는 지방 경찰 추천으로 선발했다. 과거 향약의 주도자였던 양반층 대신, 일제에 협조적인 인물들이 새로운 유지가 되었다. 특히 지주나 중소상인 중 일부가 면장을 맡으며 지역 권력을 장악했다. 이 밖에도 친일 단체 결성도 있었다. 1920년대에는 자작단, 1930년대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대화숙 등의 조직을 통해 친일 인사를 공개적으로 포섭하고, 강연이나 상을 주며 권위와 명분을 부여했다. 이 중에 특히 저 면 체제가 꽤 악랄하다. 기존 조선의 지방 체제는 동과 리로 나눠 향약 등을 통해 지역의 유지 등을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했다. 외세의 침입이 있어 의병이 일어날 때에도 바로 이 체계가 지도자부터 말단까지 그대로 의병조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제시대가 시작될 때도 이런 조직을 통해 전국적인 항일 감정이 일었다. 일제 입장에서 이걸 해결해 준 게 바로 면 제도였다. 일제는 1914년부터 시작해 1917년에 본격적으로 일본의 면 제도를 가져다 동과 리 위에다 입혔다. 멀쩡하게 동으로 구성돼 있던 지역 사회를 면으로 새로 합치거나 갈라서 분열시키고, 새로 육성되는 친일파를 면장으로 임명해 지역 사회를 장악했다.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은 총독이 지정하는 지정면/직할면으로 해서 직접 통치하고, 나머지는 일반면으로 나눠 충성하는 지역 유지들에게 다시 나눠주는 방법으로 일본이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장악해나갔다. 저 때 면장에 임명된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일본어를 배웠고, 일제에 협조적이고, 지역 내 항일 세력과 친분이 적은 사람들이었다. 전부 친일파였다고 볼 수는 없더라도 항일 인사가 아님을 인증받은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친일파를 키워내기 위한 일제의 세 가지 노력이 결집되며 태어난 새로운 부역자 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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