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놀라울 만큼 기본 어휘가 비…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놀라울 만큼 기본 어휘가 비슷하다. 숫자를 예로 들면 그 유사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1’은 대만의 파이완어 ‘ita’, 필리핀 세부아노어 ‘usá’, 자바어 ‘siji’,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어 ‘isa’, 솔로몬 제도의 아로시어 ‘e-ta’i’, 하와이어 ‘e-kahi’까지—모두 어근이 놀랍도록 비슷하다. ‘2’는 ‘dusa’, ‘duhá’, ‘loro’, ‘roa’, ‘e-rua’, ‘e-lua’ 등으로 나타나고, ‘5’는 대부분 ‘lima’ 형태를 유지한다. ‘6’은 ‘unem’, ‘unóm’, ‘enem’, ‘enina’ 등으로, 어근은 같고 접사나 억양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와이어도 ‘e-lima’, ‘e-hiku’, ‘e-iwa’처럼 이 체계를 따른다. 필리핀 언어와 인도네시아 언어는 서로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가깝진 않지만, 공통 조상어에서 유래한 기본 어휘를 많이 공유한다. 예를 들어 ‘mata(눈)’, ‘langit(하늘)’, ‘kambing(염소)’, ‘pulo(섬)’ 같은 단어들이 거의 동일하다. 이런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원래 대만 남부에서 출발한 언어 집단으로, 항해 기술을 바탕으로 남중국해를 지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폴리네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린 언어들이지만, 어휘와 구조에는 공통 조상이 선명히 남아 있다. 특히 숫자, 신체 부위, 친족 용어, 자연물처럼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기본 어휘는 수천 년이 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대만과 하와이, 마다가스카르 사이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단어들이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언어적 연관성은 단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문화적 혈연의 흔적이기도 하다. 폴리네시아 항해자들이 어떻게 멀리 흩어진 섬들에 정착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말 없는 단어들이 증명한다. 여기에 유전학과 고고학까지 더하면, 후기 폴리네시아 확산 과정에서 통가 제국 같은 정치체가 형성된 배경과 그 이전 모습도 유추할 수 있다. 언어는 지도보다 더 깊은 역사의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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