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에서 봤을 때 고려는 먼 사촌 쯤 되는 느낌이었던 거다. 같은 북방 민족인데 한반도에 몇천 년 전부터…
몽골제국에서 봤을 때 고려는 먼 사촌 쯤 되는 느낌이었던 거다. 같은 북방 민족인데 한반도에 몇천 년 전부터 들어가서 농경문화도 만들고 해양 문화까지 만든 먼 친척. 자신들보다 규모는 작지만 뭔가 되게 독특한 걸 이뤄놓은… 다시 포섭해서 같은 집안 사이로 지내고 싶은. 다른 민족은 정벌하고 넘어가거나 많이 반항하면 아주 절멸시키는 패턴이었지만 고려 상대로는 30-40년의 시간을 투자해 끝까지 정복했던 이유가 있었다. 정벌 성공 뒤에는 완전히 제국으로 병합하지도 않고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고. 그냥 눌러놓는 게 아니라 아예 몽골제국 지배층으로 끌어들이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쿠릴타이에서 황제 선거 투표권이 주어진 피정복민도 고려 뿐이었다. 충렬왕이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면서 부마가 됐고 충선왕도 쿠빌라이 손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예 개경 고려왕보다 북경에서 벼슬하며 살았던 사람. 일반적으로 피정복지 민족을 흡수하려면 그 지역에서 혼혈을 많이 만드는 방식으로 하는데, 몽골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자신들의 혈통을 순수하게 지킨다는 개념은 없었던 것 같다. 수많은 혼인과 개종을 통해 넓은 지역을 통치했고, 몇대 지나지 않아 몽골 지배층이 현지화됐다. 타 민족의 피를 자신들이 흡수해 그 민족을 통치한다는 개념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다른 정복지에서 여성 공납을 그렇게 대규모로 요구한 기록이 없다. 고려에서만 매년 수백명씩 몽골 수도로 백년 동안 데려갔다. 이건 자신들의 피에 고려 혈통을 섞겠다는 의도였을 가능성도 보인다. 게다가 고려는 일본, 남송 등을 관리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꼭 혈통으로 따지지 않아도 몽골 자신들은 해군이 없고, 송나라를 정복해도 송군을 충분히 못믿고, 차라리 고려를 몽골제국 일원으로 끌어들여 해군으로 이용할 필요성도 충분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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