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진영이 있다. A 진영은 성별 임금 차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편이고, 혹시라도 자기 쪽 인사에 성추행…

두 진영이 있다.

A 진영은 성별 임금 차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편이고, 혹시라도 자기 쪽 인사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 일반적으로 사죄하고 수사를 받거나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진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B 진영은 자기 쪽 인사에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 검찰의 협조하에 무시로 일관하거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그 피해호소자 뿐 아니라 미래의 피해호소자에게도 문제제기는 패가망신으로 이어짐을 똑똑히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성차별을 해소하려는 여성주의자 입장에서 어느 쪽과 협력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A와 협력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맞아 보이지만 현실에서 상당수의 여성주의자들은 B와 손잡고 A를 공격하는 길을 택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A와 함께하는 길은 지난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적 약자가 권리를 쟁취할 때는 길고 힘든 투쟁을 겪었다. 그 사회적 약자가 흑인이건 여성이건 그 반대쪽에 있는 그룹은 기득권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투쟁해서 쟁취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경우도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가 내 권리를 쟁취해주진 않는다.

B와 손잡고 A를 공격해보니 세상에 이 만큼 쉬운 길이 없는 거다. A는 의혹 제기를 받으니 "아이고 그런 일이. 죄송합니다. 잘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나오고, B는 A가 무너지면 그 공백은 자신들이 채울 수 있으니 어차피 온 힘을 다해 A를 공격한다. 이렇게 하니 검찰도, 언론도 모두 우리 편이 됐다! 이건 지름길, 샛길, 치트키, 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쉽고 편한 길이다.

그럼 이렇게 해서 얻은 게 과연 뭘까.

미투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사법적 정의가 이뤄지기 전에 사회적 철퇴를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거다. 문제 제기 후 당사자가 인정하지 않을 경우 수사를 받고 재판을 거쳐서 사실판단을 받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지만 여혐사건 등에 한국의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워낙 미지근한 상황에서 미투 운동이 준 추진력은 가뭄의 단비였다. '수사기관/사법부의 진흙탕' 탈출권이 생긴 거다.

물론 사실관계를 따지는 과정을 생략하니 당연히 박진성 시인이나 박재동 화백의 경우처럼 가짜 미투 사건들도 드러나면서 미투 운동의 동력도 약해진 상황이다.

그런데 B와 손을 잡고 A를 공격하니 다시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수사를 받지 않고 철퇴를 내릴 수 있게 된 거다. 단, B 진영이 허락할 경우에만.

"어, 성추행 혐의자에게 철퇴를 내리는 데 성공하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우리가 성추행을 일삼는 B 진영과 함께하고 있네?" 같은 의문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하는 거 보면 그건 금기어. 아마도 그 자기합리화 과정에는 "민주화나 검찰개혁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니 상관없다" 그리고 "어차피 A나 B나 똑같으니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등이 들어갔을 거다.

근데 만약 미국 흑인 인권운동이 공화당 세력과 손잡고 민주당이 집권 중인 주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사건들만 수사하는 쪽으로 진행됐다면 과연 지금 수준의 흑인 인권이라도 찾을 수 있었을까. 공화당이 일방적으로 집권할 수 있게 도와서 흑인 인권 쟁취?

다행인 건 이런 종류의 샛길 여성주의자들이 소수라는 점이다. 그들의 새로운 우군인 B 진영의 선거전략에 활용되며 큰 목소리는 냈지만 구체적으로 세대별 성별 투표 성향을 봤을 때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성 평등을 원하는 시민들이 설마 이런 모습을 보고 동감하겠나.

이들과 B 진영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둘 다 자신들의 태도에 모순이나 위선을 지적받으면 절대 대응하지 않는다. 철저히 무시 전략으로 나간다. 심지어 B 진영과 동맹을 맺고 치루던 선거기간 무렵에 B 진영 원내대표의 기자 성추행 동영상이 나와도 무시했던 점에 대해서 여성주의자라는 사람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다행히 B 진영의 깡무시 노하우를 전수받았는지 이 대화에 그들은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니 계속 물어야 한다. 저들이 이랬음을 기억하고 계속 주지시켜야 한다. 계속된 위선으로 스스로까지도 완벽하게 속여 뻔뻔함에 정의감까지 갖추지는 못하도록.

🔗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