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는 여객기 좌석들이 컸고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됐었다. 음식에 굉장한 투자가 있었고, 다양한…

1950년대에는 여객기 좌석들이 컸고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됐었다. 음식에 굉장한 투자가 있었고, 다양한 책과 잡지, 체스, 보드게임 등 놀이감들이 제공됐다. 기장이 있는 콧핏를 방문하는 것도 가능했다. 일부 모델에는 머리 위에 짐칸을 넣는 대신 침대칸을 만들어서 잠이 필요한 사람은 아예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승객들 역시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에 가듯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왔다. 항공사들도 그런 이미지를 장려했고, 아예 탑승을 위한 드레스 코드가 있었다. 공항에 지금처럼 일찍 도착할 필요도 없었다. 신체, 짐 검사도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비행기 출발 전까지만 도착해서 여유있게 올라타면 됐다. 배웅하는 사람들도 같이 들어와서 게이트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사실 몸 검사와 배웅객 차단은 9/11전까지는 지금처럼 까다롭지 않았다.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고 무한으로 제공되는 칵테일, 위스키 등을 마시며 서로 교양스런 대화를 나눴다. 짐 제한도 없어서 상식선에서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방을 챙겨가도 별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금 일반 사무직 종사자가 2주간 모은 임금으로 살 수 있는 비행기 표가 1950년대에는 같은 수준의 종사자가 3개월 임금을 모아야 살 수 있었다. 일단 돈이 정말 많아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다들 여유있는 부자들이라 부자티 내며 부자스럽게 즐기며 탄 거다. 지금처럼 직항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여기저기 들려 일부 승객 내리고 태워야해서 지금이면 3시간이면 갈 장소도 기본 8시간은 타야했다. 정말 긴 항로는 10일 넘게 타야했다. 바깥 구경도 한두 시간이지 정말 따분했다. 아직 기내 영화 상영이 상용화되기 전이었다. 어떻게든 즐거움을 제공해야해서 항공사들이 그렇게 음식/술/놀이에 투자를 많이 했던 거다. 게다가 아무리 교양있는 부유층만 모아놓고 점잔을 떤다 해도, 담배는 물론 시가까지 기내에서 허용되던 시절이라 몇시간을 타고나면 뿌연 공기에 니코틴 냄새에 코가 둔감해진 상태였다. 술취한 사람들도 가득한 공간이 이래저래 즐거움만으로 가득한 경험은 아니었다. 또, 지금에 비하면 굉장히 위험했다. 추락 등의 사고에 대부분 사망하는 건 물론이고 난기류 등에도 다치는 사람들이 흔했다. 아직 프로펠러기들이 많아서 지금처럼 공기가 희박하고 얌전한 고도로 올라갈 수가 없어서 난기류가 너무 흔했다. 아직 항공 안전 규제가 심하지 않아서 비행기를 그렇게 꼼꼼하게 정비하지 않아도 됐다. 당연히 더 자주 문제가 생겼다. 도착하고나면 짐을 찾는 과정은 전혀 여유롭거나 즐겁지 않았다. 비행기표가 비싸고 태울 수 있는 승객 수가 적어서 짐 제한은 없었지만 컨베이어 벨트 같은 건 거의 없었고 짐들이 한 쪽에 산같이 쌓이면 공항에 일꾼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자기 가방을 그 안에서 찾아내야 했다. 없으면 비행기 안을 다시 뒤져야 했다. 새 승객들의 짐과 계속 섞였다. 지금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고 짐을 잃는 경우가 흔했다.